2026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만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서울 강북 구도심 한가운데를 국가 상징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단순히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사업이 아니라 정부도 참여하는 국가사업이다. 주체로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모델로 삼은 것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워싱턴 모뉴먼트’, 프랑스 파리 상젤리제 거리의 ‘에투알 개선문’ 같은 곳이다. 역사와 문화, 국가적 상징, 한 시대의 가치를 모두 갖춘 장소에서 그런 의미를 종합하는 시설을 만들자는 취지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너무 커서 고도 제한이 있는 주변과 어울릴 것인지부터 지나친 애국주의적 발상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다양하다. 국가 1번지 격의 공공장소에 세우려는 대형 국기 게양대, 세워볼 만한가
해외에서도 많은 나라가 이런 국가적 상징 공간을 만들어 관광과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 중심의 내셔널몰에는 ‘워싱턴 모뉴먼트’가 있다. 또 프랑스 수도 파리의 중심 상젤리제에는 웅대하고 멋진 개선문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유명한 파리의 방사선형 도로가 뻗어 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오코넬 거리에 있는 ‘더블린 스파이어’도 이름난 명소다. ‘서울의 1번지’, ‘대한민국 1번지’인 공간에 이런 조형물을 세우고 꺼지지 않는 불꽃을 밝히면 자유와 번영, 호국과 애국, 소통과 통합의 가치도 달성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신생독립국 중 한국처럼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의 두 바퀴를 성공적으로 굴린 나라도 없다. 식민통치를 이겨내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한국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지금은 ‘유엔 공인 선진국’이 됐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했다. 인구 5000만 명이상이며 1인당 소득(GDP)이 3만 달러를 넘는 강국에 제대로 된 국가적 상징 공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 비용이 문제가 아닐뿐더러, 실상 비용도 많이 안 든다.
이런 인위적 시설물에 부담을 가질 시민이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직접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해 거대한 기념관이나 동상 같은 상징물로 우상화하는 것이 국제적 조롱거리가 돼온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워싱턴 모뉴멘트나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상징물로 벤치마킹하겠다지만, 그런 시설과 조형물이 언제 만들어졌나. 100년도 더 지난, 한 시대 전 민족주의가 횡행하고 민족국가론이 주류일 때의 유산일 뿐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코즈모폴리턴(세계 시민) 시대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끼리 연대하고 동맹도 맺는 탈민족 시대의 세계시민 시대다. 구시대의 낡은 정신을 뒤늦게 따라 하자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상황이다.
실용적 관점에서 거대한 조형물이 주변과 조화를 이룰지도 생각해야 한다. 광화문광장은 역사문화관광 구역으로 엄격하게 관리되는데 거대한 국기 게양대로 인해 조화롭지 않은 공간이 되면 광장 일대를 망칠 수 있다. 더구나 바로 맞붙어 서울의 주요 상징인 경복궁과 광화문이 있다.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중심으로 큰 예산을 들여 광장을 새로 단장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국가 1번지라면서 광화문광장을 끝없이 공사로 이어가는 것도 상식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과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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