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불모지’로 불리던 일본에 글로벌 벤처 투자자가 몰려들고 있다. 일본 정부가 파격적인 스타트업 지원책을 쏟아내는 데다 디지털전환(DX)이 본격화하면서다. 지방자치단체도 청년 인구를 늘리기 위해 스타트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돈 싸 들고 오는 글로벌 VC들
5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스타트업 콘퍼런스 ‘IVS2024’에는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를 비롯해 미국 인도 중동 등 다양한 국적의 투자자가 몰려들었다. 행사를 주최한 글로벌 벤처캐피털(VC) 헤드라인아시아에 따르면 전체 참가자 1만5000명 중 40%가 외국인이다.IVS는 2022년까지만 해도 수백 명 안팎이 참석하는 비공개 행사로 열렸지만 지난해부터 외국인 투자자 수천 명이 몰리는 글로벌 행사로 탈바꿈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축사에서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의 효과가 나오는 중”이라며 “세계가 일본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스타트업에 10조엔(약 90조원)을 쏟아붓는다. 일본 내 스타트업 신규 창업은 2019년 1265개에서 지난해 4894개로 4년 만에 네 배가량 불었다.
그동안 일본은 보수적인 기업 문화 때문에 혁신을 앞세운 스타트업의 성장이 더뎠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날 행사에도 소니와 SBI그룹, NTT 등 주요 대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사토루 시기야마 파나소닉 벤처랩 담당자는 “스타트업 투자로 신기술을 활용해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하드웨어 중심이던 기존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전문 협업 플랫폼도 급성장 중이다. 기업, 기관과 스타트업을 연결해준 뒤 수수료를 받는 업체들이다.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원하는 일본 대기업이 많다 보니 협업 플랫폼이 전성시대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문 플랫폼 운영사인 에이콘컴퍼니는 지난해 관련 매출만 30억엔을 넘어섰다.
○지자체도 ‘스타트업 유치전’
이날 행사장은 투자자와 대기업 관계자뿐 아니라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나선 지자체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유야 시라카와 센다이시 스타트업팀 매니저는 “스타트업이 지역 경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글로벌 기업과 VC도 일본 시장에 높은 관심을 쏟아냈다. 일본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해 페이팔에 매각하는 데 성공한 러셀 코머는 “글로벌 기업들이 일본을 주요 투자처로 보고 있어 엑시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며 “글로벌 투자자를 만날 기회가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국내 HR테크 기업 원티드랩의 이복기 대표는 “일본 스타트업 시장이 더욱 성장한다면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에도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