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주요 외신과 명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명품 브랜드들은 넘쳐나는 재고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 수십억 달러어치의 초과 재고를 떠안은 상황이다. 프랑스 양대 명품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HM)그룹과 케링 그룹은 지난해 기준 각각 팔리지 않아 노후화되거나 앞으로 판매될 일이 거의 없는 악성 재고를 35억 달러(약 4조8200억원)와 16억 달러(2조2000억원) 씩 갖고 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9%와 15% 씩 증가한 수준이다.
버버리는 시중에 풀린 제품 물량을 조절하기 위해 재고를 다시 사들였다. 이 브랜드는 2018년엔 2860만 파운드(약 473억원) 상당의 제품을 소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버버리뿐 아니라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페라가모 프라다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고급 브랜드는 시즌이 지난 제품을 불태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지난해 환경과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패션 제품 폐기와 소각을 금지하기로 결의하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명품업계가 다른 방식의 재고 처리 마련에 고심하는 이유다.
일부 브랜드는 적극적으로 아웃렛을 통한 판매로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 통상 럭셔리 브랜드 제품은 ‘백화점·면세점-해외명품대전-아웃렛-패밀리세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거친다. 미국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명품 매출의 13%가 아웃렛 같은 오프프라이스 스토어에서 나왔다. 10년 전만 해도 그 비중이 5%에 불과했지만 두 배 넘게 뛰었다.
특히 아웃렛 판매가 활발한 버버리의 경우 오프프라이스 매장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이익으로 따지면 절반 이상이라는 게 시장 분석기관들의 추정치다. 페라가모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웃렛 매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정가 매장의 매출을 잠식하기 때문에 명품 업체 입장에선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는 아웃렛 판매를 하지 않는다. 아웃렛 매장에서 50~60%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살 수 있다면 누가 정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사겠느냐”면서 “버버리, 페라가모 같이 수요가 줄고 실적이 크게 꺾인 브랜드들이 대부분 아웃렛 판매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이 같은 비공식 판매로 매년 1억 유로(약 15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럭셔리 브랜드에서 근무했던 박모 씨는 “마지막 유통 단계인 VIP 할인이나 직원 세일까지 가면 80~90%가량 할인도 허다하다”며 “대부분 원하는 사이즈만 있으면 제품을 건지는 수준인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이벤트”라고 귀띔했다.
일부 브랜드는 그간 금기처럼 여겼던 비공식 재판매상들을 접촉해 판로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현금 확보를 위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수개월간 비공식 재판매상들은 브랜드들로부터 제품을 팔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판매상들은 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 등에서 재고를 사서 가격이 최대 30% 이상 높은 한국이나 홍콩에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팔릴 만큼만 생산하는 것이 재고 관리에 가장 효율적이다. 케링 그룹은 매 시즌이 끝날 때마다 다음 시즌 판매량을 예측하고 재고 물량을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에 눈을 돌렸다. 이를 통해 재고 예측 정확도를 20% 이상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LVMH도 수요 예측 및 재고 통제 분석을 위해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요와 공급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여전히 어려워 명품 브랜드들은 자선 단체나 학교와 파트너십을 맺고 남은 제품을 기부하는 방식도 일부 택하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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