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채용 형태가 기존 대규모 공개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면서 평판조회가 합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상했다. ‘즉시 전력’을 선호하는 분위기에서 ‘중고 신입’ 채용이 늘어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평판조회 방식도 과거에는 뒷조사처럼 알음알음 진행됐는데 이제는 기업화된 전문 플랫폼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상사와의 불화·지원자 인성까지 확인
9일 한국경제신문이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전·현직 채용담당자 4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용 과정에 평판조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응답이 91.3%(390명)로 나타났다.평판조회 내용은 주로 업무 능력이었다. 채용담당자의 46.4%(복수응답)는 ‘전문성 등 업무 능력’을 주로 확인한다고 했고, ‘이력서상의 경력·성과 사실 확인’이 43.1%로 뒤를 이었다. 지원자 인성이나 상사·동료와의 친화력, 퇴사 이유, 학력·사생활 등을 확인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평판조회 결과는 채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채용 여부를 좌우한 사유로는 61.1%가 ‘상사·동료와의 불화, 직장 내 괴롭힘 조장’을 꼽았다. 전 직장에서 비윤리적 행위를 했거나 성과를 과대 포장한 경우도 각각 55.9%, 46.8%였다.
경력 채용이 잦은 업계에선 평판조회가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평판조회 과정에서 서류상의 역량에 미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거나 반대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지원자를 강력하게 추천받아 채용 결과가 뒤집히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스타트업 업계가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 대표들끼리 만나면 면접 때 본 모습과 다른 모습에 뒤통수를 맞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들 때문에 실망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기업들이 수시채용 방식을 선호하는 데다 중고 신입이 몰리면서 평판조회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채용담당자 5명 중 1명(19.5%)꼴로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평판조회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중고 신입 지원자가 그만큼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직원 잘못 뽑았다간 회사 이미지 추락
최근에는 직원의 과거 행적이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한 사례도 많아 평판조회의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직원 개인의 일탈이 회사 전체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해고 논란을 무릅쓰고서라도 당사자를 곧장 해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이유다.최근 부산의 한 철강회사는 20년 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한 직원이 지목되자 곧바로 퇴사 처리했다. 이 회사는 입장문을 통해 “당사는 최근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에 해당 직원을 퇴사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볼보 딜러사도 같은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소속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한 컨설팅 기업 관계자는 “해고하는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민감도가 높은 논란에 휩싸였을 땐 해고 당사자와의 법적 분쟁과 사적 제재 논란에 대한 우려가 있더라도 빠르게 정리해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일 수 있다”고 말했다.
평판조회 시장 2000억원 규모
평판조회 수요가 늘면서 전문 플랫폼 서비스업체도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국내 평판조회 플랫폼 선두 업체로 꼽히는 스펙터는 평판 관련 데이터베이스(DB) 72만 건을 확보했다. 평판을 등록한 회원은 16만 명을 웃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기업은 4000여 곳에 달한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실도 가입했다고 한다. 플랫폼을 이용하면 한 번 확보한 평판을 데이터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원자 동의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서 확보한 평판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게 스펙터 측의 설명이다.비용도 아낄 수 있다. 기존 방식대로면 지원자 한 명당 1~2주에 걸쳐 평판조회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대략 지원자 한 명당 수십만원이 소요되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면 3만~5만원이면 가능하다.
평판조회를 대행하는 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포털사이트에서 ‘평판조회’를 검색하면 위크루트체커, 레퍼첵, 레퍼런스체크코리아 등 관련 업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장 규모가 2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구직자들이 입사 지원 전 회사 리뷰를 보는 것처럼 평판조회도 젊은 세대가 중장년층보다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관련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