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대만 TSMC에 대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의 평가다.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글로벌 기업을 차례차례 밟고 올라선 삼성전자지만, 파운드리 사업에 본격 뛰어든 지 5년이 다 되도록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로 대변되는 기술력, ‘캐파’로 불리는 생산 능력, 고객과의 우호적인 관계, 협력사 생태계 등 경쟁의 성패를 가르는 분야마다 TSMC에 한참 밀리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워낙 빈틈이 없다 보니 반격의 기회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인텔 등 파운드리 경쟁사가 ‘3㎚ 공정 세계 최초 양산’ 같은 타이틀을 차지해도 승자는 언제나 TSMC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그림은 항상 되풀이된다. 경쟁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70% 수준의 높은 수율과 철저한 납기 준수를 통해 고객사의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TSMC의 장점은 더 부각되고 있다. AI 시대엔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저전력·고성능 반도체의 수요가 계속 커지는데, 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 TSMC여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엔비디아 고객사들이 자체 AI가속기를 개발하는 ‘탈(脫)엔비디아’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TSMC의 고객사는 더 늘고 있다. 공장이 없는 이들 빅테크가 칩을 제조하려면 TSMC를 찾을 수밖에 없어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인텔과 달리 TSMC는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파고 있기 때문에 고객사와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TSMC는 약 10년 전부터 ‘CoWoS’로 불리는 최첨단 패키징 기술을 개발, 삼성전자로부터 대형 파운드리 고객사 애플을 낚아챘다. 최근엔 엔비디아의 AI가속기 패키징 물량을 독식하며 매 분기 실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기업 고위 관계자는 “TSMC의 잘 짜인 최첨단 패키징 라인을 둘러보고는 경쟁해서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AI 시대의 진짜 수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영리한 마케팅도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TSMC의 ‘헝거 마케팅’(한정된 물량만 판매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에는 파운드리 공급 부족 가능성이 높다. 가격을 올려주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 만들어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고객사에 전달하자 몸이 단 애플, 엔비디아 등이 이를 받아들였다.
TSMC에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다.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는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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