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사 B사에 다니던 A는 휴직 후 복귀했으나 역량 및 경험 부족 등을 이유로 장기간 무직무 상태가 계속되었다. B사는 인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장기 무직무를 이유로 해고를 의결하되, 해고일 전까지 권고사직을 협의하라고 결정했다. A는 인사팀과 수 차례 협의를 통해 해고일 전에 권고사직을 하기로 결정하여 자필 기재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했다. 그런데 A는 퇴직 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고, 충북지노위는 A의 사직원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부당해고로 인정했다.
이와 같이 사직서를 제출한 이후 그 사직원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어쩔 수 없이 제출한 것이고 사실상 해고라고 주장하는 경우나 사직원을 제출했다가 철회하는 경우 등 자발적 사직인지 해고인지, 사직의 의사를 철회한 것인지 등과 관련한 분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자발적 사직인지 아닌지
판례는 우선 의원면직이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하는지는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 경위, 사직서의 기재 내용과 회사의 관행, 사용자 측의 퇴직권유 또는 종용의 방법, 강도 및 횟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직서 제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제공 여부, 사직서 제출 전후의 근로자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대법원 2016다255910 판결 등). 그런데 근로자가 사직서를 직접 제출한 경우는 특별한 사정(사직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하는 등 사직서 제출이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서 무효)이 없는 한 해고로 볼 수는 없다. 한편, 진의 아닌 의사표시란 의사 표시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 무효가 되는 것이다(민법 제107조 제1항). 이 경우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 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진정으로 마음 속으로는 근로관계 종료를 원치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을 경우에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6다255910 판결 등).
판결례에서 사직인지, 해고인지가 문제된 사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해고로 인정된 경우
① C사가 구조개선작업약정의 연장을 위해 과장급 이상 직원의 10%를 감원하기로 하여 58명의 감축대상을 일방적으로 정해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보직해임 및 대기발령을 했고 끝까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해고한 점 등을 근거로 사직서를 제출한 원고들은 특정 사원에 대한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사직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보아 자발적인 사직 의사가 아니고 사실상 해고라고 판단했다(대법원 2005다38270 판결).
② 근로자가 팀장과 언쟁하면서 ‘나가겠다’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언쟁 중 흥분하여 사직의 의사를 수령할 권한이 명확하지 않은 팀장에게 반항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점, 오히려 회사(실장)가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고 지시한 점 등을 근거로, 실업급여 지급을 전제로 사직을 할 수 있다고 의사를 밝혔음에도 권고사직 처리를 거절하고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고 한 사안에서, 사용자가 해고했다고 판단했다. 즉, ‘나가겠다’는 발언은 홧김에 한 발언이고 확정적이거나 진의에 의한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21누51944 판결).
③ 관리팀장이 관리 담당 상무를 대동하여 무단결근한 버스기사에게 버스 키를 반납받고 ‘사표 쓰고 나가라’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한 점, 버스기사가 3개월 이상 출근하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출근독려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묵시적 의사에 의한 해고를 인정하였다(대법원 2022두57695 판결).
④ 학교법인 이사장이 자신의 집으로 근로자를 불러 심한 욕설과 함께 ‘사표 써라. 내일 책상 치울거다’는 등으로 사직서 작성을 강요했고 해당 근로자는 그 과정에서 타 교수에게 ‘이사장님 집에 감금당해 있다. 도와달라’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기도 했고, 사직서 작성 후에도 학교법인 이사들에게 강압에 의해 사직서 작성했다는 호소문을 보낸 사안에서, 사실상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13구합2051 판결)
◇자발적 사직으로 인정된 경우
① 위 사례에서 A는 인사위원회에서 해고가 결의된 뒤에 인사팀장과 협상을 통해 B사가 제시한 권고사직 조건에 더해 수 천만원의 추가적인 대가를 받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사직원 제출이 진의 아닌 의사표시가 아니고 해고가 아닌 자발적 사직으로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23가합20741 판결).
② 대표이사가 이사에게 ‘근로자에게 회사 그만두라’고 하라고 발언한 사실은 있지만 근로자의 태도를 나무라면서 반성할 것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한 말에 불과한 점, 근로자가 대표이사에게 항의하던 상황에서도 대표이사는 지시에 따른 조치사항을 수용하면 근로자가 원하는 대로 업무내용을 변경해주겠다고 한 점, 그러나 근로자는 일방적으로 출근하지 않고 이사에게 더 이상 함께 근무하지 못해 아쉽다는 문자까지 보낸 점 등을 근거로, 해고가 아니라 묵시적인 사직의 의사를 표한 것으로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21누72859 판결).
③ 어린이집 원장과 다툼이 있은 후 사직서에 ‘원장으로부터 원고(근로자)와 같은 교사가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사임하면 되겠냐는 말을 하게 된 결과 마찰로 인하여 사직하게 되었다’고 기재하여 제출한 후 ‘사직서를 쓴다면 강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쓰고 싶다’는 문자를 보낸 사안에서, ‘원고와 같은 교사가 필요 없다’는 말을 했더라도 사직의 강요로 보기 어렵다고 보아 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대전지방법원 2015구합1290 판결).
◆사직서 제출 후 철회 가능한가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한 후 그 의사를 번복한 경우 근로관계가 종료되었는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판례는 근로자가 사직원을 제출한 경우 사용자의 승낙의사가 도달하기 전에는 철회할 수 있는 경우와 사직의 의사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후에는 철회가 안된다는 경우로 나누고 있다. 전자를 ‘근로계약 해지의 청약’으로, 후자를 ‘근로계약 해약 고지’로 본다. 사직의 의사표시가 합의해지의 청약에 해당되는지, 해약고지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사직서의 기재내용, 사직서 작성 · 제출의 동기 및 경위, 사직 의사표시 철회의 동기 기타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판단한다(대법원 99두8657 판결 등).
아래에서는 사직의 의사표시가 철회되었는지에 대한 판결례를 살펴본다.
◇사직 의사표시 철회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① 근로자가 징계를 받은 후 사직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2일 후에 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였고, 근로자는 그로부터 3일 후 사직 의사표시를 철회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사안에서,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은 근로계약의 합의해지를 청약한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해약 고지로 보아, 사직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그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99두8657 판결 등).
② 고객과의 불화 후 새로운 전보발령을 받은 근로자가 사직원을 동료에게 맡겨두고 휴가를 다녀온 이후 사직의사 철회를 주장한 사안에서, 사직원 제출을 합의해지의 청약으로 인정하면서도 사직원에 대한 대표이사의 최종 승인이 이뤄지기 전까지 사직의사 철회했다고 보기 어렵고 퇴직금 수령하면서 휴일근무수당 추가분에 대해서는 이의제기하면서도 사직의사 철회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여 사직의사 철회를 인정하지 않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78554 판결)
◇사직 의사표시 철회가 인정된 경우
① 수습근로자에게 수습 불합격 통보를 하면서 1시간에 걸쳐 수습 탈락사유만을 알려주고 그 자리에서 소지하던 휴대용 비품을 반납하도록 안내하였을 뿐 아니라 즉석에서 사직서 양식을 건네며 사직서 기재 내용까지 알려준 점 등을 근거로, 사직서 제출은 합의해지의 청약에 해당하고, 사직서 제출 당일 사직서 철회를 요구했으므로 적법하게 사직의사가 철회되었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71918 판결)
② 회사의 일방적 인사명령에 항의하여 근로자가 사직서 제출했다가 당일 사직서 철회를 요구한 사안에서, 사직서 내용이 ‘사직하고자 하오니 조치하여 주기 바람’이라는 내용이 기재된 점, 취업규칙에도 ‘퇴직 1개월 전에 퇴직원 제출하여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사직원 제출을 합의해지의 청약으로 보아 사용자의 승낙 의사표시가 도달하기 전에 사직 의사를 철회했다고 인정했다(대전지방법원 2018구합101580 판결).
◆인사담당자가 유의할 사항
근로자에게 사직을 권고하여 사직서를 제출받은 경우 사직서의 효력을 다투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근로자는 사직서가 비진의 또는 강요에 의해 작성된 것이며, 사직서 수리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거나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사직서의 효력을 다투게 된다.
따라서 인사담당자가 권고사직 방식으로 사직서를 제출 받을 때에는 반드시 근로자가 진의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인지를 그 의사를 명확히 확인받아 두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받을 때 근로자 면담을 통해 그 의사를 확인하되 면담 내용을 녹취해 두면, 향후 사직의사의 진의를 다툴 때 유용한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소속 부서장 또는 경영진이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그만둬라’는 훈계조의 발언을 빌미로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는 경우, 이를 사직의 의사로 곧바로 처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이 경우 인사담당자는 즉시 해고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출근할 것을 명하는 근거(이메일, 문자 등)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출근하지 않을 경우 다시 한번 해고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무단결근이라는 점을 밝히고 업무복귀 명령을 내려 근거를 남겨두어야 한다.
반대로, 근로자가 ‘그만두겠다’고 구두로 표현한 경우 사직의 의사표시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인사담당자는 해당 근로자의 의사가 사직하는 것인지 그 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로자가 사직의사를 명확히 한 경우 즉시 내부 결재를 거쳐 사직서를 수리한 후 지체없이 해당 근로자에게도 사직 처리가 완료되었음을 통지해 두는 것이 좋다. 사직서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통지가 근로자에게 도달한 이후에는 근로자가 일방적으로 사직서를 철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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