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1974년 경남 창원에 기계산업 중심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 뒤 흐른 시간이다. 그동안 한국 산업화의 대들보 역할만 맡은 게 아니다. 김종영(1915~1982), 문신(1923~1995)을 비롯해 박종배, 박석원, 김영원 등 현대 조각사의 거장들이 창원과 인연이 있다.
'조각의 도시' 창원은 지난 반세기 동안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4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오는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성산아트홀, 창원복합문화센터,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등에서 열린다. 특히 야철지로 활용됐던 성산패총 언덕에는 도시와 조각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여러 도시가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가운데 '조각' 장르만을 선별해 보이는 건 창원이 유일하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010년 문신조각심포지엄을 모태로 2012년부터 개최돼 올해로 7회를 맞이했다.
올해 주제는 '큰 사과가 소리없이'다. 여성의 신체성을 탐구해온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에서 따왔다. 창원을 '큰 사과'에 대입해 사과를 깎는 행위를 조각에 비유했다.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현시원 예술감독은 “사과껍질이 깎이며 스스로 나선형의 길을 만들어낸다는 시인의 상상력처럼, 이번 비엔날레에서 도시와 조각, 관객이 스스로 길을 내어 만나길 기대한다"며 "동시대 조각을 창원 도심 전역에 배치해 조각을 둘러싼 움직임을 조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행사는 실외와 실내에서 이뤄지며 16개국 60팀(7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26개국 90팀(166명)으로 꾸려진 지난 2022년 행사에 비해 규모가 줄었지만, 출전 작가들의 면면은 밀리지 않는다. 김종영, 문신, 백남준, 마이클 딘(영국), 루오 저쉰(대만), 콘노 유키(일본), 미카엘로 베네딕토(필리핀)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된다.
성산아트홀을 중심으로 열리는 실내 전시에는 조각의 수평성에 주목한 작품들이 들어선다. 지역의 랜드마크로 군림하는 '수직적 조각'이 아니라 여성과 노동, 공동체 등 지역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조각의 발자취를 탐구하겠다는 설명이다.
공업도시 창원의 변천사를 소재로 다룬 홍승혜의 '모던타임즈'(2024), 쓰레기 무덤을 연상케하는 남화연의 '과도한 열정'(2024) 등 신작들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 작가 돌로로사 시나가는 여성의 노동을 다룬 인물 군상을 선보인다.
버려진 야철지, 노동자들이 모이던 운동장 등 창원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들이 실외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된 성산패총이 그중 하나다. 철기시대부터 조개무덤으로 활용되며 해발 49m로 봉긋 솟은 언덕이다.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성산패총엔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박석원의 '적의' 시리즈가 들어선다. 일본 작가 그룹 '콜렉티브 트랜스필드 스튜디오'는 성산패총에 얽힌 이야기를 기반으로 관객 참여형 투어 퍼포먼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에는 공동체의 움직임을 테마로 작품들이 설치된다. 1978년부터 근로자들이 체육대회를 열거나 여성 노동자들이 훈련하던 공간이다. 현재는 공터로 남아있는 이곳에 10m가 넘는 정현 작가의 나무 전신주, 남화연의 '닫힌시간'(가제) 등이 들어선다.
본전시 외 특별전도 마련했다. '창원 도시의 지역성과 동시대 조각 발화의 장' 심포지엄이 9월 28~29일 이틀간 성산아트홀에서 열린다. 자연물의 생산구조를 알아보는 '흙의 마음', 안무가 노경애의 안무 프로그램, 아이들이 각자의 몸을 조각처럼 연출하는 '길이길이' 등 관객 참여형 워크숍도 만나볼 수 있다.
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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