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하면 뭐하나요"…MZ성지 퇴근길 20대 직장인도 '비명' [현장+]

입력 2024-07-16 20:07   수정 2024-07-16 20:22



"오늘 정도면 양반이죠. 평소에는 출구를 빠져나가는 줄이 끝없이 늘어져 있어요."

15일 오후 6시 성수역 3번 출구 앞 횡단보도. 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대기하던 인근 직장인 50대 김모씨는 "정말 혼잡한 날에는 칼퇴해도 딱 이 횡단보도서부터 (3번 출구) 에스컬레이터까지 10분 넘게 걸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45분께부터 6시 20분까지 성수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와 좌측 카페거리 방향의 비좁은 인도에서는 지하철역을 향한 인파가 물밀듯 쏟아지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에는 상·하행 에스컬레이터가 각 하나뿐. 순간적으로 몰리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출구가 건대입구역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와 바로 맞물려있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보행자가 대기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간간이 우회전해 성수동 카페거리로 진입하려는 차량도 있어 차와 자전거, 보행자가 뒤섞이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경찰관 나서자 혼잡도는 '완화'

앞서 지난 10일께부터 이러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자 관할 경찰서 등 관련 기관이 조치에 나섰다. 이날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경찰 소속 안전 요원의 교통 지휘였다. 현장에서 근무하던 경찰에 따르면, 지난 금요일인 12일부터 성동 지구대와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순찰대가 교대로 8명씩 성수역 3번 출구 앞에서 보행자 안전 유도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보행자들은 경찰관의 지휘봉에 의존해 횡단보도를 건넜으며 출구 앞에서는 카페거리 방향으로 50m가량의 긴 대기 줄을 이루고 있었다. 기동순찰대 소속 경찰은 "매일 출퇴근 시간대 전후로 교통 지휘를 하고 있다"며 "오후 6시 전후가 가장 혼잡하다"고 전했다. 지휘 작업을 언제까지 하는지에 대해선 "정해진 바 없다"고 답했다.

출퇴근하던 직장인은 안전 요원들로 인해 혼잡도가 일단 완화했다고 평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인근에 위치한 스타트업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안전 요원이 있으니 보행자들도 무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차량도 경적을 덜 울리는 것 같다"면서도 "경찰들도 출동 업무가 있을 텐데 이렇게 많은 인력이 매일 여기에만 몰려있는 게 맞나 싶다"고 말했다.

아예 줄 밖에 서서 인파가 줄어들길 기다리던 20대 박모 씨도 "경찰이 있다고 해서 인파가 줄어들진 않을 것"이라며 "이 일대 보도 면적이 워낙 비좁아 벌어지는 일이라 불편은 그대로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평소에는 뚝섬역이나 서울숲역으로 아예 걸어가곤 했는데, 오늘은 너무 더워 (인파가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6시 30분이 되자 집중 관리를 잇던 경찰들은 모두 철수했다. 퇴근길 인파는 수그러들었지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급히 달리는 보행자와 진입하는 우회전 차량이 맞물려 경적이 나는 등 크고 작은 교통 혼잡은 이어졌다.
성수역 유독 심각한 이유는

한경닷컴이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에서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통해 주중 퇴근 시간대(오후 6~7시) 주요 지하철역 출구당(공사 중 제외) 수용해야 하는 인구수를 추산(출구 혼잡도)한 결과, 성수역이 8750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추정치를 통해 가공한 결과지만, 최근 성수역 일대 퇴근 시간대 혼잡도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주요역·거리의 오후 6~7시 예상 평균 인구수를 지하철역 출구 개수로 나눈 결과다. 서울시 열린데이터 광장은 통신사 데이터를 분석·가공해 인구 혼잡도 등을 추산한다. 혼잡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여의도역 인근은 데이터가 여의도역·국회역·샛강역 등을 모두 포함한 여의도 전체로만 나와 추산이 어려워 분석에서 제외했다.


서울 주요 지역 중에서는 강남역과 명동 관광특구 일대가 퇴근 시간대 인구 혼잡도가 가장 높지만, 지하철역 출구 수가 각각 11개 21개 등으로 분산돼 지하철역 출구 혼잡도는 비교적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성수역 일대를 포함하는 성수카페거리의 퇴근 시간대 평균 인구수가 3만5000명 수준으로 주요 지역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하나, 지하철역 출구 수가 4개에 그쳐 출구마다 감당해야 하는 인구가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옆 뚝섬역만 해도 같은 시간대 평균 인구수가 1만3000명인데, 출구 수가 8개에 달해 분산 효과가 컸다.

더군다나 성수역은 1~4번 전 출구가 양방향 에스컬레이터 한 대 뿐으로 계단이 없다. 승강장이 지상에 위치한 섬식 구조로 규모가 작은데다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까지 없어, 출퇴근 시간대 사람이 몰리면 시민들이 역 내부로 진입하는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전문가와 시민들은 지하철 출입구 신설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촉구했고, 서울교통공사 측은 12일 "성수역 출입구 신설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호등 설치? 횡단보도 옮겨야"
이날 몇몇 시민들은 "차라리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설치해달라", "경찰 배치가 비효율적이다" 등의 의견도 제시했다. 한경닷컴이 성동구와 서울시, 서울경찰청 등 관련 기관에 문의한 결과, 3번 출구 앞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될 경우 보행자의 안전과 통행 편의성이 되려 저해될 수 있다는 기술 검토 결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구 앞 보도가 좁은 상황에서 우회전 차량이 신호만 보고 이동하다 보면 보행자가 더 위험할 수 있어서다.

성동구 관계자는 "횡단보도의 위치를 카페거리 방향으로 약간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횡단보도 위치를 기준으로 신호 대기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에 노점상이 있어 이를 이전하고 있다는 설명도 더했다.
"보도 확장 필요"

전문가들은 단순히 출구만 많이 만들어서는 안 되고 보도 확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성수역에 여러 유명 기업이 입주하고 카페거리에 관광객이 몰리며 당초 처음 설계할 때 예상했던 승객 수요보다 크게 늘어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단 출입구 등 주변 시설 확장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시설의 가용 인원이 늘면 그만큼 보도에 동시에 쏟아지는 인원도 늘어나는 것"이라며 "성수역 출구들은 모두 차도와 인접해있고 보도 면적이 좁아 일부 구역은 아예 차량 통행을 우회시켜 보도 면적을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김영리/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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