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월세까지 건넨 공공병원 의사…"필수·공공의료 악순환 빠져"

입력 2024-07-17 15:54   수정 2024-07-17 16:19



"1999년 실손보험 도입, 2000년 의약분업, 2003년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등의 영향으로 국내 필수의료 분야는 인력 부족이 계속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 시작했다."

신동규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은 17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아카데미에 참석해 공공·필수의료 분야 위기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내 의료 분야에서 저비용 고효율 시대는 종말이 왔다"며 "국민의 20%를 차지하는 사회적 약자와 5%를 차지하는 외국인의 건강권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젊은 의사들이 공공·필수의료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의사수만 늘리는 방식으론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서울의료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14년부터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서울의료원에서 1469건, 적십자병원에서 3231건 등 4700건의 수술을 집도했다.

통상 대학병원 교수 등 전문의들이 상부위장, 간·담·췌장, 유방, 대장·항문 등 특정한 세부 전공 한 분야 수술만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이들 수술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병원 형편 탓에 전문의를 여러명 뽑아 운영할 수 없는 데다 공공병원 외엔 갈 곳 없는 환자들을 모두 책임져야 해서다.

그가 돌보는 환자 상당수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일부는 수술 비용은 물론 주거 비용조차 마련 못해 퇴원 후 갈 곳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신 과장은 이런 환자들에게 고난도 암 수술을 해주고 차비까지 쥐어준다. 이들의 퇴원 후 삶까지 돕는 의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2022년 십이지장암으로 적십자병원을 찾아온 환자 A씨에게 췌장, 십이지장 등을 함께 절제하는 고난도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을 마친 뒤 퇴원을 머뭇거리는 환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고시원 방값을 못내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신 과장은 주저하지 않고 한달치 월세 30만원을 뽑아 환자에게 건넸다.

이뿐 아니다. 수술 후 고향인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차비가 없다던 환자에겐 비행기 값 60만원을 내줬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네팔 지진 등 세계 곳곳에서 의사를 필요로 할 땐 언제든 달려갔다.

신 과장은 공공병원에 근무하고 있지만 다양한 고난도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암 환자의 위, 췌장, 비장, 신장, 부신 등을 모두 제거하는 암 수술도 소규모 인력으로 소화한다. 그는 "이렇게 생명을 살리는 큰 수술을 해도 건강보험 수가는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며 "성형외과 쌍커풀 수술 비용보다도 저렴할 것"이라고 했다. 생명을 살리는 분야 건강보험 진료비가 턱없이 낮게 책정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틈틈이 저소득층 환자의 열악한 건강 상태를 알리는 논문도 썼다. 건강보험 데이터를 활용해 저소득층인 의료보호 환자들은 건강보험 환자보다 위암 수술 생존율이 낮다는 것을 입증해 2013년 의학술지에 발표했다. 같은 위암 1기라고 해도 수술 후 생존율은 의료보호 환자가 30% 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신 과장은 "의료보호 환자는 수술 생존율로만 보면 암 병기가 하나 정도 높다는 의미"라며 "수술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안정감 등이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공·필수의료 분야에서 젊은 의사들을 찾는 것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신 과장처럼 다양한 수술을 혼자 할 수 있는 외과 의사도 사라지는 추세다.

이에 대해 그는 "특정 분과 외과 전문의가 다른 수술을 아예 못하는 게 아니라 잘 하는 수술만 하다보니 그것만 하는 의사로 굳어진 것"이라며 "상부 위장관 외과 전문의라면 하부 위장관 수술을 함께 익히는 방식으로 전공과 부전공 분과를 함께 전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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