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하노이 노딜을 계기로 북한이 도발 사이클을 돌리고, 대미 관계가 악화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두둔하면서 안보리 결의는 무용지물이 됐다.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은 더 거리낄 게 없게 됐다. 물론 달러가 세계 외환 거래의 8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적성교역법, 오토웜비어법 등을 동원한 미국의 독자적 다층 제재는 효과가 크다. 그러나 북한의 제재 회피 방식도 진화하고 있어 다국적 대응이 절실해졌다. 유엔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와 유로 금융 결제망을 피하기 위한 공해상 석탄과 유류 물물교환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선박 불법 취득과 개조를 통한 정유 제품 반입, 불법 환적이 최근에도 동·서해 등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제3국과의 합작·위장·유령회사를 세워 대체 시장을 찾아 제재망을 피하고 있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전문가패널 활동이 중단되면서 감시의 눈마저 사라졌다.
러시아가 제재 무력화의 길을 더 넓혀주는 것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시켰다. 그러자 러시아는 위안화를 사용하거나 달러화 비중을 축소하고 루블화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우회로를 찾고 있다. 러시아는 독자 지급결제시스템(SPFS)을 만들어 인도 튀르키예 유라시아경제연합(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동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북·러가 루블화 결제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것은 북한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준 꼴이다. 북한이 해킹, 불법 거래로 번 돈의 세탁 통로를 러시아가 제공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등 무기 개발 자금으로 전용될 것이다.
이 때문에 무력화된 유엔의 대북 제재 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개별 제재에서 서방 세계가 연합체계를 구축하면 훨씬 효력이 크다. 일종의 대북 제재 동맹이다. 러시아에 넘겨진 미사일 등 북한의 무기들은 동북아를 넘어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만큼 단합 명분도 있고, 국제적 제재의 정당성도 얻을 수 있다. 각국이 정보망을 연결해 북한의 불법 교역과 해킹 등에 공동 대응하면 제제 회피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서방이 북한을 지원하는 국가들에 ‘세컨더리 보이콧’(제재국과 거래하는 정부 은행 기업에 대해 제재) 압박까지 가한다면 검은돈 세탁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공해상의 불법 환적 차단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서방 국가들의 단합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I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유럽·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이 단합해 북·러 군사협력에 대응하자고 한 것은 의미가 크다. NATO 사무총장이 “더 나은 정보 교류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한 것도 고무적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무너진 유엔 제재에 대처할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아쉬운 건 1년 전에도 NATO와 IP4가 북·중·러를 겨냥해 안보 협력을 다지는 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 규탄, 선언 수준을 넘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은 워싱턴, 파리, 런던을 타격할 수 있는 실질적 위협이 됐다. 그런 만큼 자유진영이 힘을 모아 북한 핵·미사일 개발과 이를 위한 자금줄을 틀어막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들을 내놔야 하고, 한국이 이를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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