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방위산업주가 들썩이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경향이 강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당선되면 세계 각국이 방위비를 크게 늘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국내 방산 업체들이 폴란드, 호주, 이집트 등에서 대형 수주 잔고를 확보한 만큼 2028년까지는 안정적인 실적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방산 시장은 군과 연구·개발(R&D)을 통해 무기체계 완제품을 생산하는 '체계 업체'와 70여 개의 부품·소재 협력 업체들이 전후방 공급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체계 업체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로템,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5개사가 있다. 5개 체계 업체는 각 무기 분야별로 통상 2개사가 체계 종합을 담당한다. 다소 제한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시장 선도하는 방산 5개사
체계 업체들은 최근 대규모 해외 수주를 기반으로 실적이 우상향하는 추세다. 안정적인 내수 수요가 유지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채산성이 높은 수출 물량이 확대되며 매출이 증대되고 수익성이 제고되고 있다. 부품 및 소재 생산을 담당하는 협력 업체들도 전방 체계 업체와 유사한 실적 추이를 보이고 있다. K-9 국내 전력화 종료와 K-2 양산 지연으로 실적이 부진했던 기동화력 분야 협력 업체들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현대위아(K-9 포신), STX 엔진(K-9 엔진), HD 현대인프라코어(K-2 엔진), LS 엠트론(K-2 궤도)의 방산 부문 매출이 증가했고 이엠코리아(K-9 화포 모듈), 코리아디펜스인더스트리(천무 분산탄체계)는 실적 개선 폭도 두드러졌다. 기동화력 분야는 타 무기체계보다 국산화율이 높아 체계 업체와 협력 업체 간 실적 동조성이 더욱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타 분야의 방산 업체도 군의 첨단화 기조하에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지휘 정찰·통신 장비 분야의 휴니드테크놀러지스, 이오시스템, 빅텍 등은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에 통신 장비와 체계 구성품을 공급하고 있다. 항공기·유도무기 분야의 한국화이바, 퍼스텍, 단암시스템즈 등은 한국항공우주산업과 LIG넥스원에 항공기용 캐노피와 유도탄 구동장치 및 노즐, 항법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무기체계 전반에 활용되는 각종 커넥터와 방산 소재를 생산하는 연합정밀, 삼양컴텍, 세아항공방산소재, 코오롱데크컴퍼지트 등도 마찬가지로 최근 업황 개선의 수혜를 입고 있다.
동맹국 방위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트럼프
방산주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가가 오름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2년간 400% 상승했다. 현대로템은 92%, 한화시스템은 25%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각국이 자주국방 예산을 크게 늘리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국내 방산 업체들의 무기 수출액이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방산주는 지난 4월 이후 오름세가 주춤한 상황이다. 기술주와 밸류업 관련주의 약진에 밀린 데다 수출이 둔화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수출 호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국내 방산 업체의 수출액은 약 2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전년(135억달러) 대비 48% 늘어난 수치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2022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 세계 각국의 갈등 수준이 높아졌다”며 “자주국방력 강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상황에서 ‘K-방산 신드롬’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치러질 미 대선이 다시 한번 방산주의 상승 동력이 돼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선 가능성이 커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유럽 지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증액을 압박한 바 있다. 나 연구원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동맹국에 방위 예산을 늘리라고 강요할 것”이라며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면서 지정학적 갈등 수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방위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최근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하고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국내 방산 업체엔 호재가 될 수 있다. 위협을 느낀 나토(NATO)가 인도·태평양 4국(IP4)인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에 적극적인 군사 협력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협력 분야는 무기 제공 등으로 관측되고 있다.
대형 수주 계약 또 터지나
증권가에서는 방산 5개사 중 LIG넥스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유망 종목으로 꼽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차세대 전투기 엔진 독자 개발에 나서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화는 최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발주한 첨단 엔진 개발 관련 ‘개념설계’ 프로젝트에 두산과 공동으로 참여해 지난 6월 검증을 마쳤다. 두 회사는 본격적인 R&D를 의미하는 ‘기본설계’ 과정에 각각 뛰어들어 방위사업청 일감을 따낸다는 계획이다. 방위사업청은 향후 10년간 최소 3조 원을 투입해 추력 1만5000파운드급 엔진을 개발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생산에 들어간 한국형 전투기인 KF-21 엔진과 같은 급이다.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자체 전투기 엔진 보유국이 된다. 항공 엔진을 독자 개발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6개국뿐이다. 전투기 엔진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주요국이 전략 자산으로 지정해 핵심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서다. 민간 기업으로는 미국 프랫&휘트니(P&W), 제너럴일렉트릭(GE), 영국 롤스로이스PLC 등 3개 업체가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신규 수주 소식을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7월 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와 K9 자주포 등 9억2000만 달러어치 무기 수출 계약을 했다. 6월엔 한국 방위사업청과 전투기 KF-21에 장착되는 엔진 등의 공급 계약(5562억 원)을, 4월엔 폴란드와 다연장포 천무를 수출하는 계약(2조2000억 원)을 했다. 이를 반영해 최근 NH투자증권은 이 회사 목표주가를 27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렸다. 메리츠증권도 25만 원에서 29만 원으로 목표주가를 상향했다.
9월 진행되는 인적분할도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신설 지주회사인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칭)와 존속 사업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쪼개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만 거느리고 방산 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분할 이후 방산 사업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유럽 방산 기업 주가 수준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LIG넥스원도 여러 건의 대형 수출을 앞두고 있다. 루마니아와 이라크에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Ⅱ(천궁-Ⅱ)’를 수출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천궁-Ⅱ 등 방공 무기체계를 수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수출 물량 증가로 이익 증가세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가는 한국 방산 기업들이 빠른 시간 내 무기를 제조해 공급하는 납기 대응력 부문에서 탁월한 강점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대형 수주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납품된 폴란드의 무기체계들도 마케팅 쇼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다. 장기적으로 주요 방산 업체들과 조선주 내 방산 사업을 영위하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도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