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대기성 자금이 역대 최고치로 향하고 있다. 기준금리 변동에 대한 전망으로 관망심리가 커진 데 더해 주도주(株) 부재로 투자자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올 상반기 증시를 이끈 반도체 업종에 대한 고점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매수를 망설이고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일(지난주 말) 기준 국내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 규모는 86조115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9일에는 이 금액이 86조3232억원까지 늘어나면서 2006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역대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올 초 CMA 잔고가 74조7814억원을 기록했던 것을 고려하면 약 15.4% 증가했다.
CMA는 증권사가 투자자의 자금을 받아 기업어음(CP), 국공채,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 지급하는 상품이다.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하고 하루만 돈을 맡겨도 이자를 받을 수 있어 뚜렷한 용처를 정하지 못할 때 자금을 잠시 묶어두는 용도로 사용된다.
투자자 예탁금도 한 달 전보다 크게 증가했다. 지난주 말 기준 국내 투자자 예탁금은 56조5465억원으로 지난달(54조1011억원)보다 약 2조4000억원 늘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계좌에 넣어두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돈이다.
머니마켓펀드(MMF)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지난주 말 기준 MMF 설정액도 206조4749억원으로 한 달 전(200조7193억원)보다 6조원가량 증가했다. MMF는 금융사가 고객 돈으로 단기 금융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초단기 금융 상품이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요구불예금과 함께 증시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증권가에선 오는 9월 미국 기준금리 변동에 대한 조짐으로 그동안 누적분에 대한 단기 조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투자자들이 투자보다는 '실탄'을 축적하려는 심리가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인하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해 당장 매수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관망하려는 심리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유안 KB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 후퇴 등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지속으로 '장기자금 운용'보다 새로운 투자처가 나타나면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단기자금 운용' 수요가 증가했다"며 "갈 곳을 잃은 자금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주도주였던 반도체 업종의 '고점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 상반기 인공지능(AI) 빅테크를 중심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온 만큼 과열 해소를 위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날 뉴욕증시에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해 반도체 수출 제한 등의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에 반도체주 투매 현상이 나타났다. 메타와 애플은 각각 5%대와 2%대 떨어졌고 엔비디아는 6%대 급락했다.
여기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며 "미국에 (더 많은) 방위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트럼프 집권 시 반도체 동맹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극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칩 장비 제조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트리얼즈가 10.48% 급락하는 등 반도체 장비 관련 주식이 일제히 하락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나스닥 급락은 주식시장 전반의 약세 반전이 아닌 순환매 장세가 시작됐음을 시사한다"며 "과열 부담이 높은 종목들이 쉬는 가운데 장기 소외주들의 가격갭 축소 차원에서 반등이 당분간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만 대기성 자금들이 조만간 투자처를 찾을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올 하반기 증시 최대 변수로 꼽혔던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급격히 커지는 등 변동성 우려가 줄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는 "미 중앙은행(Fed)이 오는 11월 대선 전에 기준금리를 낮춰선 안된다", "재임 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을 재무부장관으로 고려할 것", "전기차에 이의는 없지만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만 할 수는 없다", "지금보다 더 저렴한 가격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발언하는 등 시장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과거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 증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급격한 자금 유출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당선이 유력해질수록 증시는 이를 불확실성 해소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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