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서남쪽으로 1시간30분을 달리면 고즈넉한 도시가 나온다. 중세 프랑스의 천년고도이자 기독교인들의 순례지, 품질 좋은 와인으로 유명한 투르다. 루아르강을 따라 자연과 고성이 어우러진 경관을 자랑하며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리는 곳.
투르에도 어두운 과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하던 시기다. 1940년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시 중심부가 잿더미가 됐다. 전후 10여 년간 재건 사업을 거치고 나서야 옛 모습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프랑스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풍경화는 투르의 역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인상주의를 계승한 초기 작업부터 나치의 침공으로 어두워진 드로잉, 새살이 돋은 듯 색채가 폭발하는 후기작까지. 작가가 한평생 지켜본 투르의 절경이 경기 수원시립미술관에 펼쳐졌다. 그동안 한국에서 드브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98년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연 판화전을 제외하면 굵직한 국내 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프랑스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 컬렉션과 작가 유족의 소장품 70여 점을 들여왔다.
“나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앞에 서 있는 내 안의 감정을 그린다.” 작가가 남긴 말이다. 전시 제목이 마음(mind)과 풍경(landscape)을 합친 ‘마인드스케이프’인 이유다. 같은 풍경이라도 당시 인상에 따라 다른 색채로 그린 대목에서 모네를, 기호화된 추상에서 피카소를 떠올릴 만하다.
의사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유년 시절에 투르의 외가에서 휴가를 보내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건축가가 되고자 파리 에콜 데 보자르 건축과에 들어갔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보고 감명받은 뒤 회화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전시 1부의 ‘풀밭 위에 소녀’(1940)가 그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흐릿한 얼굴과 뭉개진 윤곽이 두드러지는데, 당대 유행하던 인상주의 화풍을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한 결과다. 1941년 파리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을 눈여겨본 피카소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평소 동경하던 선배 작가의 작업실에 드나들며 입체주의까지 탐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총력전 국면에 접어들며 작가는 가족과 흩어졌다. 혼란과 외로움을 느낀 드브레는 다시 투르를 찾았다. 알록달록한 물감 대신 검정 목탄과 연필을 집어 들었다. 강제수용소의 희생자와 나치, 인질 등의 모티프를 상징적 기호로 표현한 ‘나치의 사악한 미소’(1946)는 제목처럼 섬뜩하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면서 작가의 전성기도 함께 찾아왔다. 2부에 전시된 ‘거대한 얇은 검정’(1962년 추정)의 검은 배경 사이로 비치는 밝은 물감이 분위기 전환을 암시한다. 작가의 아들이자 CCC OD 이사장을 맡은 파트리스 드브레는 “유채색이 검은색을 이기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의 백미는 루아르강을 주제로 그린 작품이 모인 ‘루아르의 방’이다. 길이가 3m에 달하는 작품 세 점에 각각 연보라와 황톳빛 분홍, 붉은 물감이 칠해져 있다. 투명한 햇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루아르강을 통해 느꼈을 작가의 심상을 짐작하게 한다.
전시는 작가가 투르를 떠나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남긴 작품들로 마무리된다. 노르웨이 레르달 폭포의 초록, 이스탄불의 분홍, 도쿄의 푸른 수직선과 멕시코의 분홍 등. 이전보다 한층 화사해진 색감과 물감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두툼해진 질감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작가는 1980년대에 한국을 몇 차례 찾아 풍경화 20여 점을 남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파트리스 드브레는 “아버지는 한국을 회상하며 ‘푸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인상적인 나라’라고 말씀하셨다”며 “이곳에서 아버지의 일생이 전부 담긴 전시를 열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수원=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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