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마저 출산율 급락…가족 가치 무너지면 저출생 대책 무용지물"

입력 2024-07-19 06:28   수정 2024-07-19 10:09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저출생 공약을 설계한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사진)가 "가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청년들의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저출생 대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 급여를 늘리는 등 아무리 파격적인 저출생 대책을 내놔도 결국엔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출산율 반등은 이룰 수 없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지난 18일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북유럽처럼 일·가정 양립이 잘 이뤄지고 있는 곳도 초저출산 국가가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총선 전까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상임위원을 역임한 그는 인구 문제에 함께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홍 교수는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선 현행 의료시스템이 지속될 수 없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사들의 독점적 권한을 간호사 등 다른 직역에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지난 4월 총선 당시 국민의힘 공약총괄본부장으로 저출생 공약을 만들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저출생 반전을 위한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A. 여전히 부족하고 아쉽지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신설되는 인구전략기획부에서 정책을 발전시켜 추진하길 바란다. 인구전략기획부가 새로 가지게 된 예산 사전심의권은 구속력이 전제돼야 의미 있는 정책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인구전략기획부는 기획을 잘해야 한다. 그러려면 앞으로 국민과 더 많이 소통해 좋은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 특별회계를 따로 조성해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Q. 지난 4월 출생아 수(1만9049명)가 1년 전보다 2.8%(521명) 늘었다. 회복세가 이어질까?
A. 올해 출생아 수가 전반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1분기 출산율 감소 폭이 너무 컸다. 4월에 숫자가 늘어난 것은 작년에 발표한 신생아 특례대출 등의 정책 효과로 보인다. 기존에 발표한 대책을 최대한 빨리 시행해 출산율 반등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대부분의 저출생 대책이 법률 개정 사안이라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Q.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충분한 효과가 있을까?
A. 전반적으로 가족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한국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는 일·가정 양립 정책이 잘 마련됐는데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개인의 삶이나 커리어를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꾸는 데 엄청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저출생 정책 효과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Q. 정부가 특단의 저출생 대책을 내놔도 중소기업은 따라가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 같다.
A.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가 받쳐주기 때문에 육아휴직으로 직원이 빠져도 문제가 없다.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 기업은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고용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모든 지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유다. 중소기업이 경력단절 여성이나 조기 은퇴한 고령층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나아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진입하는 순간 적용받는 온갖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과도한 중소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급변하는 인구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Q. 이민자를 늘려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는 방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A. 막연하게 이민자로 노동력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동안 독일은 이민자를 데려와 돌봄노동 인력을 채웠는데 주변국도 고령화되면서 그 숫자가 점점 줄었다. 모든 나라가 인구변화를 겪으며 이민자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유휴인력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키고 모자란 인력은 기술 발전으로 메우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나아가 우리(내국인)가 느끼기에도 잘 사는 나라, 청년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라가 돼야 외국인들도 정착하려고 하는 매력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

Q.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의대 증원 이슈가 촉발됐다. 의대 증원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A.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20%가량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직접 추계한 결과 2040년에는 이 비중이 65%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의료계에선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해 의사 수가 남아돌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에서 2020년 발간한 논문을 살펴봤더니 근거에 오류가 있었다. 논문에선 2030년 의사 수가 15만4000명가량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여기엔 한의사와 앞으로 배출될 한의대 졸업생 수 3~4만명이 포함됐다. 한의사를 추계에 넣어 의료 인력 전망치가 뻥튀기된 셈이다. 양방 의사 수만 놓고 보면 앞으로 의사 수는 부족하다는 게 합리적 추계다. 다만 앞으로 의료 인력을 추계할 때는 미래 기술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렸는데 향후 10년 뒤 의료 기술 발전으로 의사 수가 과잉될 수 있기 때문이다.

Q.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A. 의료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증질환은 비대면 진료로 관리하는 등 신기술을 접목하는 것도 의료 공급을 늘리는 방안 중 하나다. 치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투자와 기술 혁신도 중요하다. 의사들이 독점적으로 쥐고 있는 권한을 간호사 등 다른 직역으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간호사의 경우 '치료'와 '요양'의 중간 영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의료인도 건강관리, 영양관리 등의 분야를 맡을 수 있다.

Q. 저출생·고령화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도 크다.
A. 건보 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일 수 있도록 본인 부담을 높이는 식의 정책이 필요하다. 실손보험도 과도한 의료 이용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출을 관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사전건강관리에 투자하는 것이다. 병에 걸려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도록 사전에 건강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건보 지출에서 사전건강관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2%뿐이다. 이제는 '치료'에서 '예방'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사망 한 달 전 연명치료 등에 투입되는 의료비가 생애 의료비 지출의 12.5%에 달한다. 생명 연장도 중요하지만 극도로 비효율적인 영역에 과도한 의료비 지출이 이어지면 남은 가족이 고통받고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이런 영역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의료비 지출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Q. 저출생으로 건강보험 수입도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A.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현재 8%로 묶인 건강보험료율 법적 상한을 높이는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국고 보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15% 정도만 지원되고 있다. 나중에는 고자산가 노인들의 건보 부담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국보다 먼저 인구구조 변화를 겪은 일본도 노인들의 건보 부담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Q. 국내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에 진학했지만 의료가 경제 성장이나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부분은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50세 정도였다. 지금은 80세 정도로 올라가 미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의사들이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하며 부가가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좋은 인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이전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속도가 줄고 소아과 등 필수의료를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워진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환경이나 정책 변화의 결과라고 본다. 다만 의료계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디지털 헬스케어 투자, 데이터 활용 등을 통해 의료를 산업화해야 한다. 의료계가 반발하며 규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데 의료 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의사들이 먼저 규제를 풀고 도전하자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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