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세론? 미리 보는 경제정책 변화는

입력 2024-08-06 06:00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면 어떤 경제정책을 추진하게 될까? 트럼프노믹스 2.0의 출발은 조 바이든 정부의 물가 관리 실패에서 출발한다. 공화당 선거공약집인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에 나타난 Fed 개편안을 보면 양대 책무 중 아예 고용 목표를 빼고 물가 관리에만 주력하겠다는 공약이 포함돼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트럼프 후보는 제롬 파월 의장에게 이례적으로 금리인하와 관련해 2가지를 주문해 파장을 몰고 왔다. 하나는 파월 의장이 구상하고 있는 금리인하는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요구를 수용하면 파월 의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조건부 인사 방침도 밝혔다.

2가지 주문은 이번 대회 직전까지 보이던 태도에서 백팔십도 변화된 것이라 오히려 트럼프 후보의 숨은 의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트럼프 후보는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저금리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왔다. 조 바이든 정부의 충격요법식 금리인상으로 자신이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았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트럼프 후보의 금리인하 불가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리인하 불가 발언은 시기적으로 대선 이전에만 한정된다는 것이 트럼프 후보의 숨은 의도다. 대선 이전에 금리를 내리면 민주당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의 금리인하 불가 요구에 파월 의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용 지표로 보면 ‘삼의 법칙(Sahm’ Rule)’에 부합돼 지금이라도 금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삼의 법칙이란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치가 지난 1년간 최저 실업률을 0.5%p 이상 높으면 경기가 침체된다는 실증적 이론이다. 현재는 0.6%p까지 벌어졌다.

물가 지표도 Fed가 가장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상승률이 3% 이내에 들어왔다. Fed가 추정하는 통화정책 시차가 9개월∼1년인 점을 고려하면 대선 이전에 금리를 내려도 문제가 없다. 파월 의장이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해 금리를 내리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월의 선택은? 금리결정에 이목 집중

파월 의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트럼프 후보의 요구를 수용하면 자신의 임기를 보장받겠지만 Fed의 전통인 독립성은 훼손된다. 반대로 거절하면 임기는 보장받지 못하지만 Fed의 전통을 지킬 수 있다. 파월 의장은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민감한 상황에서 포퓰리즘 결정을 반복한 점을 고려하면 전자를 선택할 경우도 온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노믹스 2.0의 핵심은 재정정책이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이 재집권하면 재정지출 면에서는 뉴딜정책 추진과 함께 법인세 인하, 소득세 폐지 등 대폭적 감세정책을 공약했다. 중국에 초점을 맞춘 고관세 부과로 보완하겠다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재정적자가 확대돼 고금리 쇼크가 닥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2017년 트럼프 취임 직후 개봉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요즘 들어 주목받고 있다. 대중영화인 만큼 사실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고 이에 따라 고금리 쇼크가 다시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가부도’라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던진 만큼 우리의 국가부도 재발 가능성을 점검해봐야 할 때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부도는 외환위기다. 엄밀히 따지면 외환 보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컸지만 나라 밖에서는 곧 위기가 닥친다고 경고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 경제 각료는 ‘펀더멘털(경제 기초 여건)이 괜찮다’는 안이한 경기 진단과 대처, 그리고 부처 간 갈등이 궁극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데 초점을 맞춰 이 영화는 전개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내외 상황을 보면 미국과 다른 국가 간 따로 노는 ‘대발산(Great Divergence, GD)’이 시작됐다. GD가 시작된 1994년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은 정책금리를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 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같은 시점에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정책금리를 5%에서 4.5%로 인하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시대 배경과 비교하면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잇달아 발생(‘그린스펀·루빈 쇼크’라 부른다)했다.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 ‘IT 버블 붕괴’라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처음 상영될 때 인기를 끈 것은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상황이 재현됐기 때문이다. Fed는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2014년 10월 말 양적완화(QE) 종료에 이어 이듬해 12월부터 금리를 인상했다. 출구전략이란 금융위기로 흐트러진 비정상 국면을 정상 국면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같은 시기 유럽 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고 양적완화 시한을 연장했다. 당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필요하면 언제든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를 내놓았고, 이후 필요할 때마다 실행에 옮겼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행(BOJ)도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도입했다.

2018년 3월 Fed의 금리인상 이후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 이어 6월 Fed의 금리인상 이후에는 튀르키예 등 중동 국가, 9월 Fed의 금리인상 이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연속된 Fed의 금리인상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국가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세론이 굳어지는 과정에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될 때의 상황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Fed의 금리인하 시기는 갈수록 지연되고 있다. 올해 최대 여섯 차례까지 예상된 금리인하 폭도 한두 차례로 축소됐다. 변수가 있긴 하지만, 마지막 금리인하 기대마저 대세론이 굳어진 트럼프 후보의 불가 발언으로 멀어지고 있다.

반면 Fed보다 늦게 금리를 올린 ECB는 지난 6월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G7 국가 중에서는 특수 환경에 처한 BOJ와 영국 중앙은행(BOE)을 제외하고는 4개국이 금리를 내렸다. 대부분 신흥국 중앙은행도 선진국 중앙은행보다 먼저 금리를 내렸다.

현재 우리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2선 외화(캐나다와 맺은 상시 통화스와프 제외)까지 포함하면 5300억 달러가 넘는다. 3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인 300억 달러보다 무려 17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에 의한 적정 외환보유액인 3800억 달러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앞날과 관련해 경착륙,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 일본형 복합 불황, 베네수엘라 사태 등 각종 비관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책당국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애써 강조하지만, 대다수 국민도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각료가 보여준 펀더멘털론과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정책 결정과 집행자들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 판단 지표, 골드만삭스의 외채상환계수 등으로 평가해보면 국가부도(외환위기)의 재발률은 낮게 나온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정책당국의 안이한 경기 진단과 대처, 그리고 부처 간 갈등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가부도의 날〉이 다시 주목받을 정도로 불안한 우리 국민의 심리부터 안정시켜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경제팀과 마찬가지로 ‘시간만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경제정책과 운용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삶은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그때는 국가부도가 재발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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