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정체 틈타 일상을 파고드는 토종 OTT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4-07-29 07:51   수정 2024-07-29 07:52


“우리는 고객의 잠과 경쟁한다.”
글로벌 1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한 얘기다. OTT 사업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이용자가 밤을 새워서라도 보고 싶을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해야 하는 것이 OTT의 목표이자 과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오랜 시간 전 세계 이용자들의 잠을 빼앗고 일상, 그리고 시간을 차지해 왔다.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명성에 걸맞게 2016년에 진출한 이후 줄곧 국내 OTT 이용자들의 일상과 시간도 독식해 왔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는 걸까. 올 들어 넷플릭스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MAU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해당 서비스를 사용한 이용자 수를 뜻한다. 빅데이터 분석기관 아이지에이웍스의 ‘넷플릭스 앱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MAU는 올 들어 14.5% 줄었다. 지난 1월 1281만 명이었던 MAU는 매달 감소세를 나타냈으며 지난 6월엔 1096만 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작년 6월(1274만 명)에 비해선 16.2% 줄어든 수치다.

넷플릭스 독주 체제가 이어지던 한국 OTT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볼 것이 마땅히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정체기를 겪고 있다. 그사이 티빙, 쿠팡플레이 등 토종 OTT는 새로운 무기를 내세워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티빙과 쿠팡플레이의 MAU는 각각 740만 명, 663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티빙이 574만 명, 쿠팡플레이가 531만 명에 그쳤던 것에 비해 100만 명 이상 늘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부진에 타격

올 들어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부진이 이어지는 사이 토종 OTT의 스포츠 중계 등 새로운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부진은 그동안의 흥행 성적표를 보면 쉽게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크게 차별화되지 못한 채 기존 공식들을 답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중 ‘돌풍’, ‘더 에이트 쇼’가 국내에서 어느 정도 화제가 되긴 했지만 큰 파급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닭강정’, ‘로기완’, ‘기생수’ 등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앞서 ‘오징어 게임’, ‘킹덤’, ‘더 글로리’ 등이 공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킨 것과는 상반된다.

물론 넷플릭스엔 한국 콘텐츠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가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한국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대대적 흥행이 필요하다.

한국 이용자 다수가 OTT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연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한국인만큼 자국의 드라마, 영화를 사랑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 정도다. 다른 나라 작품이 아무리 많아도, 글로벌 시장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이 나와도 한국 이용자들의 OTT 가입과 이용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애국심과 별개로 한국 콘텐츠 자체에 있다. 다른 나라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한국 콘텐츠가 재밌고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 곳곳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 콘텐츠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한국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지도 않는다. 까다로운 안목으로 콘텐츠를 선택하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워낙 눈높이가 높다보니 업계에선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통용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시청자와 관객이 있어 K콘텐츠 열풍이 가능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테스트베드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이 까다로운 한국 이용자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말고도 방영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도 한국 작품을 다수 공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잘된다고 해도 그것이 곧 넷플릭스의 브랜드 가치로 이어지진 않는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강력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 탄생이 지연될수록 이용자의 시간은 다른 OTT가 차지할 수밖에 없다.
토종 OTT, 야구 중계로 이용자의 일상이 되다


그사이 티빙과 쿠팡플레이는 새로운 전략으로 한국 이용자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 것은 스포츠 중계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야구 중계권을 따내 큰 반전을 이뤄냈다.

한국에서 야구는 스포츠인 동시에 오늘날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 잠실 야구장이 가득 차기도 할 정도이다. 티빙은 이런 야구를 OTT 주요 콘텐츠로 인식하고 2024~2026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디지털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 이를 통해 프로야구 팬들을 대거 유입시키는 것은 물론 광고형 요금제 도입, 야구 관련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시너지를 냈다. 쿠팡플레이 역시 지난 3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2024’를 독점 생중계하며 화제가 됐다.

야구뿐만 아니다. 티빙은 2024~2028년 한국프로농구연맹(KBL) 리그 중계도 하기로 했다. 앞서 쿠팡플레이는 2023~2025년 K리그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쿠팡플레이는 2022년부터 매년 유럽 프로축구 명문 구단들을 초청해 경기를 치르는 ‘쿠팡플레이 시리즈’도 진행하고 있다. 결국 토종 OTT가 4대 스포츠 가운데 배구를 제외한 야구, 축구, 농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도 미국 등에선 스포츠 중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스포츠 중계 대신 콘텐츠 제작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티빙과 쿠팡플레이는 이 틈을 파고들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다행히 토종 OTT는 올 들어 스포츠뿐만 아니라 OTT 핵심 콘텐츠인 드라마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티빙은 오리지널 콘텐츠 ‘이재, 곧 죽습니다’, ‘피라미드 게임’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tvN과 동시 공개된 드라마 ‘눈물의 여왕’, ‘내 남편과 결혼해줘’, ‘선재 업고 튀어’의 연이은 열풍에 힘입어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게 됐다. 향후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이뤄질 경우엔 보다 큰 시너지가 날 전망이다. 쿠팡플레이의 경우는 오리지널 콘텐츠 수가 많진 않다. 하지만 지난해 말 방영된 ‘소년시대’ 등으로 화제성을 이어가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이 같은 토종 OTT의 행보는 의미가 크다.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아 효과를 내고 글로벌 OTT의 독주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앞으로 토종 OTT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며 넷플릭스가 가진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넷플릭스의 MAU가 올 들어 14.5% 감소하는 동안 같은 기간 월간 카드 결제금액은 472억원에서 463억원으로 1.7% 줄어든 것에 그쳤다. 즉 넷플릭스에 자주 들어가서 콘텐츠를 보지는 않더라도 구독은 유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볼 만한 작품이 없더라도 다음엔 ‘오징어 게임 2’와 같은 꼭 봐야 할 작품이 나올 테니 귀찮게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는 대신 구독 상태를 이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이용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앞으로 한국 이용자의 일상, 그리고 시간을 차지하는 OTT는 어디가 될까. 최근 토종 OTT가 보여주고 있는 역량에 더욱 다채롭고 새로운 전략들이 더해진다면 얼마든지 해볼 수 있는 게임이 되지 않을까. 높고 공고하던 벽에 작은 균열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면 언젠가 시장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 이용자들의 잠을 모조리 토종 OTT가 빼앗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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