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트럼프를 두려워하는가 [해리스vs트럼프①]

입력 2024-07-29 07:00   수정 2024-07-29 07:15

[커버스토리 : 해리스vs트럼프]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불과 2주 새 폭풍이 휘몰아쳤다.

지난 7월 13일(현지 시간) 피격사건 이후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움켜쥐는 것 같았던 판세는 다시 5대 5가 됐다. 피 흘리는 와중에도 주먹을 불끈 쥐며 내뱉은 ‘Fight’는 강력한 트럼프의 한 방이었다. 트럼프가 백악관 문 앞에 다다랐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세계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불러올 미래를 우려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1기보다 강력한 ‘슈퍼 트럼프’가 올 것이라고 했다. 세계 증시를 끌어올린 M7과 나스닥 지수가 급락하고 미국 국채금리와 엔화는 치솟았다.

기세등등하던 트럼프의 발목을 잡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바이든이 7월 21일(현지 시간) 대선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대선판은 한 번 더 뒤집혔다. 유력 주자는 바이든이 공개 지지를 선언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다.

민주당은 11월 대선을 100일 남기고 새판을 짜게 됐지만 트럼프를 2%포인트 차로 이길 수 있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왔다. 해볼 만한 싸움이다.

트럼프를 두려워하는 세계, 트럼프의 분열정치에 공포를 느끼는 미국 내 진영이 승리가 예견된 승부를 뒤집을 수 있을까. D-100. 트럼프 대 해리스. 세계경제를 뒤흔들 폴리코노미의 2차전이 시작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담긴 메시지
“미국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미국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공식은 엄청난 수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 산업을 다시 장악할 것이며 수년 동안 잃었던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되찾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되찾을 것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되찾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

지난 7월 18일(현지 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의 열기는 광적이었다. 트럼프 피격사건 이후 첫 공식 자리이자 그가 공화당 대선후보직을 수락하는 날이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주제로 무려 93분에 달하는 트럼프의 연설은 공화당 지지자이자 트럼프 마니아들의 연호와 함성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자국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더 강력해진 ‘트럼프 2기’의 예고였다. 청중들은 “유에스에이(USA)”를 연발했다.

명실상부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바꿔 말하면 미국을 제외한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연설이었다.

‘USA’를 외치는 연설장에서 트럼프가 겨눈 총구는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동맹국까지 이어졌다. 유럽, 우크라이나, 대만, 일본 그리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로지 미국만이 제외였다.

중국에 대한 경계는 더 확대됐다. G2 무역전쟁을 촉발한 그다. 이번 수락 연설에서는 중국을 14회나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코로나19를 겪은 세계에 중국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 일은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차이나 바이러스’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중국의 손발을 묶은 무역전쟁은 ‘슈퍼 트럼프’가 등장하면 한층 더 강화될 전망이다. 그는 “최고의 무역 거래는 내가 중국과 체결한 거래”라며 과거 중국을 봉쇄한 25%의 고율 관세 정책을 치켜세웠다. 이미 올해 초부터 중국에 관세율 60%를 적용할 수 있냐는 외신의 질문에 “아니, 그보다 높을 수 있다”고 답한 트럼프다. 현재 미국의 중국 상품 평균 관세율은 12%다. 트럼프는 이를 60% 이상까지 올릴 각오다. 궁지에 몰린 중국이 반격을 시작한다면 연쇄 효과를 낳으면서 세계 무역을 크게 교란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요 동맹국들도 나란히 경계 대상에 올랐다. 트럼프는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이용당해 왔다”며 “이런 나라들은 소위 동맹국으로 간주됐다”고 말했다. 유럽, 대만, 일본, 한국 등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다면 다른 모든 국가에 대한 10%의 보편적 기본 관세가 예상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엔 치명타다.

환율전쟁도 불사할 전망이다. 이 역시 강달러로 수출경쟁력을 끌어올렸던 일본과 한국에 좋지 못한 소식이다. 앞서 트럼프는 ‘엔저 현상’을 맹비난하며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 급락은 미국에 ‘대재앙’이라고 우려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비롯한 현 바이든 정부가 일본의 엔저 현상을 사실상 묵인하고 방조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엔저 현상이) 멍청한 사람들에게는 좋게 들릴 테지만 우리 제조업체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라며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할 수 없어 많은 사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금리인하론과 ‘트럼프 대세론’이 겹치면서 7월 24일엔 엔화가 달러당 154엔까지 내렸다. 최근까지 달러당 160엔대로 치솟던 엔화가 강세를 나타낸 것이다.

무역 및 환율전쟁과 함께 트럼프는 미국에서 제품을 만드는 가두리 전략을 취할 전망이다. 이 경우 바이든 정부에 이어 한 번 더 세계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바이든 정부에서도 미국은 전 세계 설비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백악관에 따르면 2000억 달러(약 259조원)에 가까운 투자가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삼성SDI, 한화큐셀과 LG화학, 씨에스윈드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 본토에 생산기지를 건설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충분치 않다. 트럼프의 첫째 타자는 대만이다. “대만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100% 가져갔다. 대만이 우리에게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발언도 이러한 생각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이 발언은 아시아 반도체 기업 전반에 긴장감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10%의 관세 부과가 오랜 미국의 우군인 유럽에 더 치명적이란 분석도 나왔다. CNBC 방송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피격사건 직전인 7월 12일에 낸 메모에서 “트럼프의 재선은 긍정적이던 유로 지역 성장 전망에 상당한 하방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며 “우리의 기본 추정치는 물가상승률이 0.1%포인트 상승하면 국내총생산(GDP)이 약 1% 정도 타격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역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 등 일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국경을 마주한 이웃 국가들에도 자비란 없다. 멕시코는 미국과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체결해 무관세 혜택을 받는 나라다. 중국은 멕시코에 대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를 통해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막기 위해 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이미 GM도 테슬라도 정치적 압박에 멕시코에 추가 투자를 중단한 상태다.

이주민 문제도 얽혀 있다. 트럼프는 이주민에 대해 ‘동물들(animals)’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재집권 시 제3국 추방을 포함해 불법 이민자에 대한 전례 없는 강력한 단속을 공언했다.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
세계를 향한 무차별 폭격에 외신들도 그의 재집권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2024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를 표지로 내세웠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앞선 때였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는 (정치적) 보복, 경제적 보호무역주의, 극적이고 과도한 거래들을 거리낌 없이 추구할 것”이라며 “트럼프 집권 2기는 세계 각국의 의회와 (기업) 이사회를 절망으로 채우리라고 예상한다”고 했다. 이미 트럼프를 한 번 경험한 세계가 그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유는 1기와 달리 트럼프가 훨씬 전략적이고 노련한 모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도 짚었다.

그리고 2기에는 1기를 채운 베테랑 직업 관료 대신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통하는 극단의 충성파들이 내각을 채울 가능성도 언급했다. 극단적 정책들이 추진력을 더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예고대로 트럼프가 지목한 러닝메이트는 ‘미니 트럼프’로 불리는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오하이오주 초선 상원의원인 밴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러스트벨트(제조업 쇠퇴 지역)로 꼽히는 오하이오에서 1984년 태어났다. 마흔 살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그는 트럼프보다 더한 강성 고립주의자로 통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란을 제재하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펀치를 날려야 한다”, “핵무기를 가진 최초의 이슬람 국가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영국이 될 수 있다” 등의 발언이 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리틀 트럼프’의 등장에 유럽 내에서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연합(EU)에도 재앙”이란 우려가 EU 고위 관계자에게서 나올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더 과격해진 트럼프 내각’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등 두 개의 대형 전쟁을 치르고 있는 세계를 큰 혼돈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는 미국이 유럽에 ‘피(군사력)’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나쁜 거래’라고 판단한다. 트럼프는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해 왔다”고 전했다.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든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나토의 약속을 미국이 깰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에 전쟁만큼 불확실한 리스크는 없다.
D-100, ‘약체’ 해리스의 돌풍
기세등등하던 트럼프 지지율에 균열이 생긴 건 바이든이 대선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한 7월 21일(현지 시간)부터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유세 중단에 들어갔던 바이든은 “재선에 도전할 의향이 있었지만 제 당과 나라의 이익을 위해 물러나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임무에 전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며 대선후보직 사퇴 성명문을 발표했다. 완주 의사를 밝혔던 그가 대선을 불과 107일 앞두고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부통령인 해리스를 차기 후보로 공개 지지했다. 바이든은 “해리스가 우리 당의 후보가 되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내외 압박을 받던 바이든의 퇴장은 곧 기폭제가 됐다. 마침 미국 내부에서도 트럼프 피격 후 재집권 가능성에 미국 사회의 분열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시작할 때였다. 트럼프도 이를 의식한 듯 대선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미국의 절반이 아닌 미국 전체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했다”며 ‘통합’을 강조했지만 ‘반(反)트럼프’ 세력까지 모으기엔 역부족이었다.

움츠러들었던 민주당 인사들도 결집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허들로 여겨졌던 당의 핵심 인사들도 해리스 지지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하원의장을 지낸 민주당의 거물급 여성 정치인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SNS에 “거대한 자긍심과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론으로 나는 해리스 부통령을 미국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또한 공동성명을 통해 “해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와 경쟁 후보로 여겨졌던 미쉘 오바마도 지지를 선언했다.

선거자금 기부도 쇄도하고 있다. 7월 23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해리스 선거 캠프는 이날 오전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후 41시간 동안 110만 명의 기부자들로부터 1억 달러(약 1383억원)를 모금했다고 발표했다. 해리스 캠프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공동기금 모금 등을 포함한 금액으로 이는 미국 대선 역사상 최고액의 기록이다.

민주당의 고액 기부자이자 구글의 전 임원인 닝 모스버거 탕은 “이건 정말 앞으로 10년, 수십 년 이후에도 회자될 역사 속 한순간처럼 느껴진다”며 “이제 우리는 수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전략가인 드리트리 멜혼은 “바이든 대통령의 희생으로 사람들은 ‘나도 무언가를 내주겠다’는 모드가 됐다”고 짚었다.

이제 민주당과 해리스에게 남은 건 100일의 시간뿐이다. 해리스의 강점으로는 인종 대통합이 꼽힌다. 해리스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이자 아시아계다. 그 역시 과거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등 외가 혈통을 꼽는 등 인도와의 인연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해리스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아프리카계·아시아계’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다. ‘분열’을 떠올리게 하는 트럼프와는 반대 이미지다.

약점은 영향력이다. 트럼프는 해리스가 바이든보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서방 유력 외신 또한 해리스가 트럼프의 승리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조 바이든, 민주당에 재집권을 위한 2차 기회를 주다’란 기사에서 민주당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바이든이 준 기회를 허비하지 않으려면 해리스를 대항마로 내세우는 손쉬운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민주당에는 인재가 많다면서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적절한 경쟁 방식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 대신 트럼프에 맞설 대선후보를 결정해야만 진정한 통합을 이루고 후보로서의 정당성도 확보함으로써 승리를 위한 경쟁력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경선을 치를 경우 분열과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민주당이 서둘러 해리스를 대선후보로 결정하는 대관식을 치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겠지만 이는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승부는 예측불허다. 7월 2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12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자 가상대결에서 해리스는 44%를 기록하며 트럼프(42%)를 오차범위(±3%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11월 5일 대선까지는 단 100일이 남았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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