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가구는 거기서 거기?…한끗 차이가 삶을 바꾸죠

입력 2024-07-25 17:02   수정 2024-07-26 02:25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건 쉽지만 얼마나 혁신적 아이디어로 세상을 나아가게 할 것인가는 어려운 일이에요. 디자인이 그런 일이죠.”

핑크색 매니큐어에 핑크색 반지, 핑크로 포인트를 준 흰 운동화에 올화이트 슈트를 입은 노신사. 첫눈에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64)다. 라시드는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디자이너’라 불린다. 라시드의 핑크 사랑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독특한 곡선이 돋보이는 ‘큐뮬러스 의자’,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첼시 의자’, 심플하면서 기능적인 ‘오(Oh) 의자’, 생동감 있는 ‘비타민 싱크’ 등이 대표적이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건축도 하고 주얼리, 휴대폰, 치약도 디자인하고 신발도 만든다”는 라시드 디자이너는 40여 년간 400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22일 이탈리아 하이엔드 주방 브랜드 ‘라스텔리’에서 내놓은 하이엔드 주방 ‘카란’을 디자인한 그를 서울 삼성동 론첼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번에 디자인한 제품은 무엇인가요.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이탈리아 하이엔드 주방 브랜드 라스텔리의 신제품 ‘카란’을 디자인했어요. 카란은 소비자 입맛에 맞게 맞춤 제작할 수 있는 유연성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모듈 가구이면서 소재, 마감 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타깃 소비자는 누구인가요.

“유연성을 지닌 모듈형 주방이라 모든 사람을 겨냥할 수 있어요. 제품만 보면 20대 커플부터 60~70대까지 다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디자인은 9세 아이도, 90세 노인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주방 가구 대부분 비슷해 보이는데,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주방 가구 시장은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미니멀하게 디자인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화려한 것보다 단순하게 만드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에요. 주방의 분할선을 최소화하고 라인을 맞추되 기능성은 유지하는 데 신경 썼습니다.”

▷카란 아일랜드의 상판을 LX하우시스 제품으로 썼네요.

“LX하우시스와는 세 번째 프로젝트예요. 10년 전 인조대리석 컬렉션 스파클을 디자인했고 두 번째는 하이막스 소재로 인테리어 특화 주택을 만들었죠. 이번엔 포세린(도자기) 상판 마감재를 썼는데 그 품질이나 마감, 성능이 아주 뛰어났어요. 주방은 내구성이 좋은 마감재가 필수거든요. 얼룩이 잘 생기지 않는 비흡수성을 갖췄기 때문에 오염을 잘 흡수하는 대리석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취향에 맞게 색상을 고를 수 있습니다.”

▷다방면에서 활동하는데, 어떻게 성격이 다른 소재들을 다 다룰 수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원주의자(pluralist)를 존경했어요. 미국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 같은 디자이너가 그렇죠. 열두 살 때 그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코카콜라 병, 인공위성,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위한 우주선, 냉장고 등 분야의 경계 없이 활약한 인물이었습니다.”

▷대중성 vs 창의성, 상업성 vs 정체성 사이에서 간극을 줄이는 게 어렵진 않나요.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바로 그거예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업성과 대중성을 중시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 창의성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거죠. 이 균형을 맞추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합니다. 예술가는 타협하지 않죠. 디자인은 서비스의 역할도 하지만 그럼에도 창의적이어야 하죠. 창의성이야말로 인간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진화시킵니다. 디자이너는 혁신을 더해 사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이에요.”

▷스스로 돌아볼 때 그 간극을 얼마나 줄였다고 평가합니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40여 년 동안 400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숫자로 말하긴 어렵지만 기업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때론 디자이너에게 맡긴 제품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기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존하려면 모두가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계속해서 나아지려는 노력을 소비자에게 보여줘야 해요. 그래서 디자이너가 필요한 거죠. 이번 작업에서도 소재가 품은 가능성,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목적은 판매가 아니에요. 다른 건축가, 디자이너들에게 이 자재가 지닌 잠재력,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했어요.”

▷사람들이 왜 아름다운 디자인에 열광할까요.

“물건은 정적인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이 들고 변화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예요. 저는 이 물건을 여기에, 저 물건을 저기에 두는 게 제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요. 그래서 주변 사물의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죠. 사람들이 아름답고 간결하며 사용하기 쉽고 세상을 더 좋아지게 만드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후대에 어떤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싶습니까.

“디자이너라면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제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겁니다. 모두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사람, 그렇게 평가받고 싶어요.”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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