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분리조치 요구 권한은 없다

입력 2024-07-30 16:25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근로기준법상 '분리조치'라는 용어는 없다. 관련 조항에서는 ①신고 후 조사기간 동안 피해근로자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근무장소의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하거나 ②괴롭힘이 확인된 경우 피해자가 요청하면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고 지체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할 뿐이다(근로기준법 76조의 3).

그러나 분리조치는 신고 후 또는 괴롭힘이 확인된 후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를 통칭하는 용어로 널리 쓰인다. 근무장소 변경의 인사 명령, 직무 변경을 수반하는 전보가 분리조치의 대표적인 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있거나 확인된 때 신고자(피해자)의 선제적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무에서는 괴롭힘 신고가 있는 경우 기업이 요구 받은 분리조치를 실행할 의무가 있다거나, 역으로 신고인(피해자)이 특정한 분리조치를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다르게 분리조치의 조건, 방식, 기간 등 세부사항은 법에는 정해져 있지 않고 판결을 통해 그 의미가 구체화될 사항이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나가면서 분리조치에 관한 판결도 다수 내려지고 있는데, 기업이 분리조치를 준비하고 실행할 때 실무적으로 알아둘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해 본다.


분리조치 실행 여부 및 세부사항은 어떻게 정하나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이 신고 후 분리조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전보가 부당하다고 그 효력을 다투는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 전보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업무상 필요성과 가해자에게 생긴 생활상 불이익을 기준으로 제시한 사례가 있다(서울행정법원 2022구합70339 판결,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54693 판결 등).

이것은 통상의 전보에 적용되는 기준과 일견 동일한 기준이다. 단, 분리조치 일환인 전보의 유효성은 통상의 전보에서 말하는 업무상 필요성과 생활상 불이익에 더해 직장 내 괴롭힘에 특유한 요소를 추가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신고인 요구대로 전보를 실행하는 경우 기업이 경영상 감수할 어려움(피신고인이 다수라서 이들 전원을 전보할 때 상당한 경영상 어려움이 야기될 수 있는지) △인사 형평 △전보가 이루어지는 시점(아직 괴롭힘이 확인되지 않은 조사단계인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보에 관한 의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와 관련 △신고인 요구대로 피해자를 전보하면 근무평정 등 공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고 인사 형평상 문제가 발생하는 점 △피해자가 처음에는 가해자가 전보되어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에 동의했던 점을 고려할 때, 피해자를 전보하지 않은 조치나 가해자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도록 전보한 사용자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한 판결이 보인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단5036126 판결). 이 판결은 분리조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전보는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 인사 형평, 당사자 의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해져야 함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특정한 분리조치 실행을 요구할 권리는 없어

피해자가 괴롭힘을 이유로 진상조사 및 보호조치를 요구한 사안에서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보호조치를 요구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가 있다(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9가합104979 판결).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3항은 사용자가 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경우 조사를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위 판결은 위 조항이 그 문언을 넘어 피해자에게 사용자에 분리조치 등 보호조치를 직접 청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는 법리적으로 타당한 해석일 뿐만 아니라, 분리조치 본질에 비추어서도 타당하다. 무엇보다 분리조치는 본질상 피해자가 아닌 기업이 업무상 필요성과 생활상의 불이익 등 요소를 고려해 실행하는 조치이므로 피해자가 특정한 분리조치를 임의로 정하도록 허용함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다. 분리조치는 법에서 말하는 '적절한 조치' 또는 '필요한 조치'의 예시일 뿐이다. 분리조치를 실행할지, 실행한다면 그 조건·시점·방식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합리적 재량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신고 후 분리조치는 신속 실행이 바람직하지만

괴롭힘 신고 후 분리조치가 4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실행된 점을 문제 삼아 피해자가 관여 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 사안에서 △당시 인사책임자가 궐위 중이었던 점 △조사에 시한이 소요되었고 신고 처리 권한이 있는 자들 사이에서 처리 방향에 관한 의견이 불일치했던 점 등을 들어서 해당 직원의 배상책임을 부정한 예가 있다(대전고등법원 2021나13620 판결).

이 판결은 분리조치 실행시점에 대한 본격적 판결은 아니다. 피해자가 신고 후 처음부터 분리조치를 요구한 사정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관련 직원이 괴롭힘에 가담했다는 피해자 주장도 인정되지 않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따라서 이 판결을 근거로 신고 후 분리조치 실행시점이 다소 지연되어도 무방하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기업은 (특히 피해자 요구가 있다면) 최대한 조속히 분리조치 실행 여부를 검토하고 그 입장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단, 이 판결은 △분리조치가 신고 직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해당 기업이 자동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는 않는 점 △그 적정 실행시점은 분리조치가 지연된 사정, 조사 진행상황 등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정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피해자 보호' 분리조치 않으면 기업에 손해배상 책임

괴롭힘이 인정된 가해자에게 징계처분을 한 후 피해자 요구가 있었음에도 분리조치를 하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일 부서에 계속 근무하도록 하여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입어 입원까지 하게 된 사안에서,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700만원)이 인정되었다(춘천지방법원 2021가단37928 판결).

기업은 근로자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대법원 2018다270876 판결). 이와 관련, 분리조치 미실행은 기업의 보호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책임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 분리조치 뿐 아니라 일체 어떠한 보호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단, 분리조치 미실행에 따른 기업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특정한 시기에 요구한 방식으로 분리조치를 실행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는 점 △적절한 분리조치는 여러 관련 요소를 고려한 후 정해지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①피해자 요구가 있었다 해도 분리조치 미실행, 또는 요구를 일부만 수용한 분리조치가 실행된 사실만으로 그대로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단, ②업무상 필요성, 생활상 불이익, 분리조치를 실행한 경우 기업이 경영상 감수할 어려움, 인사 형평, 피해자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해자 보호를 위해 적절한 분리조치가 특정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은 그 분리조치 미실행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위 ②에 해당하는 경우 손해배상 책임의 부담 가능성을 매개로 기업에 피해자의 ‘합리적 요구’에 따라 특정한 분리조치를 실행할 의무가 인정되는 것과 결과적으로 유사하다. 단, 피해자는 그 미실행에 대한 구제수단으로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있지만 그 분리조치의 실행을 직접 강제할 수는 없다.


기간 제한이 없는 분리조치 실행에는 신중 기해야

괴롭힘으로 인한 해고가 양정 과다로 무효가 되었지만 괴롭힘 자체는 인정되었는데 가해자가 해고 무효에 따른 복직 조건으로 기업이 제시한 영구적 재택근무를 받아들였다. 이 경우 그 분리조치는 적절하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5125184 판결). 영구적 재택근무는 “괴롭힘 피해를 당한 직원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법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분리하기 위한 조치”로 가해자 주장과 달리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판결은 우선 분리조치 기간이 사안에 따라서는 상당히 장기간으로 정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 이 판결을 기업이 모든 경우에 아무 기간 제한 없이 분리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까지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 판결은 △가해자의 괴롭힘 사실 자체가 확정된 상태였고 △가해자가 영구적 분리조치를 받아들인 특수한 사정까지도 고려해서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업은 분리조치 실행에 임하여 그 기간에 내재적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즉, 분리조치는 기본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므로 그 필요성이 없어지면 가해자 요청에 따라 기간을 단축하거나 해제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사안 성격에 따라서는 △피해자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되 과도하지 않은 기간으로 분리조치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이 종료되면 다시 분리조치 유지 필요성을 검토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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