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는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1150억달러)에서 60%를 점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추격을 공식화한 지도 5년이 지났다. 올해 1분기 TSMC와 삼성의 점유율은 각각 62%, 13%로 그새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 10조4000억원의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AI 열풍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초격차’를 기반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독주를 재개할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다.
삼성 안팎에선 반도체 사업이 잘못된 길을 걷기 시작한 시점을 10년 전쯤으로 본다. 파운드리사업부로 분리되기 3년 전이다. 삼성전자는 2014년 반도체연구소 내 D램 연구 인력 3분의 1가량을 파운드리 쪽으로 보냈다.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실증해 보인 뒤 ‘초격차’란 말이 나온 시기였다. “D램은 너무 잘하니까 연구 인력을 조금 줄여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었다고 한다. 파운드리를 키우려는 의지도 컸다.
당장은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5년의 반도체 개발 주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부작용이 나타났다. 2019년에는 AI 시대 주력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조직을 축소했다. 코로나19 사태 땐 빅테크들의 폭발적인 수요에 취해 수면 아래 있던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전(前) 삼성전자 고위 인사는 “차라리 메모리에만 집중했더라면…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1세기 기술 패권 전쟁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은 한 우물만 판 회사다. 넘사벽 애플, TSMC가 그렇고 AI 시대 총아로 불리는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기업은 모든 일을 잘하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한다”(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란 말 그대로다.
이들 기업은 과감한 투자로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했다. 애플은 지난해 299억달러, TSMC는 57억달러를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삼성전자도 21억달러를 투자했지만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 등을 모두 합한 수치다. 애플은 스마트폰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애플 생태계’를 조성했다. TSMC는 전통 파운드리 사업에 패키징, 테스팅 등을 연계한 ‘파운드리 2.0’ 시대로 가고 있다.
SK LS 두산 등 주요 그룹들이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SK는 ABC(AI·배터리·반도체)로, LS는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세계 3대 경영 석학으로 꼽히는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집중화’를 강조했다. “성공적인 기업 전략은 특정 활동이나 시장에 자원을 집중하고 그를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있다”(경쟁 우위)고. 기업들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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