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나와도 피비린내 나는 듯…광기로 서늘한 황정민의 '맥베스'

입력 2024-08-01 18:21   수정 2024-08-02 01:15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어리석고 모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포착한다. 4대 비극 중 마지막 작품인 맥베스에는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 예언에 홀린 맥베스는 자신을 아끼고 믿었던 덩컨 왕을 암살하고 왕좌에 앉는다. 하지만 믿음을 배신하고 왕관을 쓴 대가로 정신이 황폐해진다.

맥베스는 왕좌를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에 친구 뱅코우를 죽이고, 파이프 지방의 영주 맥더프 가족까지 몰살하기에 이른다. 맥베스는 망자가 자신을 비웃는 환각에 빠진다. 셰익스피어는 욕망과 죄의식에 휩쓸려 수면에 들지 못하는 맥베스의 상황을 “맥배스는 잠을 죽였다”고 표현했다.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맥베스’는 주인공의 이런 광기를 강렬한 연출로 소름 끼치게 그려낸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마치 맥베스의 심장 박동 소리처럼 극장을 쿵쿵 울린다. 맥베스가 환각을 보고 고통스러워할 때면 핏빛 조명과 금속이 서로 긁히는 날카로운 소음이 관객의 눈과 귀에 꽂힌다. 음향과 조명만으로도 극장은 서늘한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연출 기법도 연극 무대에 효과적으로 녹여냈다. 맥베스가 덩컨 왕의 가슴을 단검으로 여러 차례 찌르는 모습이 영상으로 무대 양쪽에 비친다. 이어 죽음을 맞은 왕의 얼굴이 점점 녹아내려 형태를 잃어가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고전과 현대가 독특하게 어우러진 세계관도 매력적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전통 치마인 킬트와 현대 정장이 만난 의복을 입다가 전투에 임할 때는 방탄조끼를 장착한다. 전형적인 봉건 왕권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군인들은 현대 특수부대 차림을 하고 총을 들고 다닌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문학적 표현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인생은 바보들의 이야기일 뿐, 소음과 광기로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다”처럼 작품의 철학이 응축된 명대사들이 담겼다.

실험적이고 강렬한 연출이 매력적인 ‘맥베스’. 셰익스피어 희곡의 시적인 대사와 인간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전개 덕분에 박진감이 느껴진다. 연극 애호가뿐 아니라 셰익스피어 비극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볼 만하다. 새하얀 무대에 맥베스 황정민의 얼굴을 뒤덮은 잔득한 피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8월 18일까지.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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