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티메프 사태는 폰지사기다

입력 2024-08-01 17:35   수정 2024-08-02 00:59

아마도 그는 이번에도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미 경험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 터다. 두 번째 나스닥시장 상장의 꿈이 바로 눈앞이었다. 큰 오산이었다. 무리하게 돌려막은 자금 흐름이 끊기는 순간, 6만여 중소 판매자(셀러)가 자금난에 빠지고, 수많은 소비자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최근 벌어진 티몬·위메프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된 구영배 큐텐 대표의 이야기다.
탐욕과 도덕적 해이의 결말
도주설까지 나돌던 구 대표가 지난달 30일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피해자들은 사태 해결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5시간 가까이 진행된 질의와 답변에서 허탈하게도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태 발생 1주일여 만에 ‘급조된 쇼’에서 주인공들은 짜여진 낡은 각본대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티메프 사태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 폰지 사기란 무엇인가. 한 사기꾼이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약정하고 초기엔 실제 수입금을 지급해 투자자를 끌어모은다. 이 초기 수익금은 뒤의 가입자에게 돈을 받아서 메꾼다. 그리고 다음 가입자, 또 다음 가입자의 돈으로 돌려막는다. 원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계속해서 더 많은 가입자를 모집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입자가 줄어들고, 원금이 떨어진다. 폭탄이 터진다.

e커머스 중개 플랫폼인 티몬·위메프는 예컨대 10만원짜리 상품권을 8만원에 할인해 판매했다. 싸게 판매하자 단기에 매출이 확 올랐다. 소비자로부터 받은 결제금은 판매자들에게 두 달 뒤에야 정산해줬다. 이런 식으로 매출을 부풀리고 돌려막기가 가능한 구조를 짰다. 할인분을 떠안았고, 그렇게 손실은 쌓여갔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할인폭을 키웠다. 결국 판매자에게 줄 돈이 바닥났다. 수많은 판매자가 약속한 두 달이 지나서도 정산금을 받지 못한 채 도산 위기에 처했다.

구 대표는 나스닥에 상장하면 손실을 메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업을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티몬과 위메프 자금을 제멋대로 동원해 위시를 인수하는 데 썼다. 이런 자금 유용을 손쉽게 설계하기 위해 티몬·위메프의 재무조직을 큐텐에 흡수 통합시켰다. 양사엔 영업조직만 남겨 가혹한 판매 경쟁으로 내몰았다.

위시 인수 자금 유용은 명백한 배임·횡령이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내 바로 상환했고, 한 푼도 횡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금 운용에 대해선 “십수 년간 누적된 행태”라고 했다. 섬뜩하다. 연간 227조원에 이르는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이런 ‘관행’을 일삼고 있다면 ‘제2의 구영배’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금감원·공정위는 사태 방조
위기의 징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자본 잠식 상태인 회사를 통해 수천억원의 돈이 오갔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한 것은 기껏해야 자율 관리를 위한 업무협약(MOU)뿐이었다. 처음부터 규제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산업이 성장해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으면 그때부터는 정부의 시간이 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티메프 사태의 보이지 않는 방조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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