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세수 걱정할 게 아니라 '의무지출 예산' 성역 깨야

입력 2024-08-02 17:38   수정 2024-08-03 00:42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5층에 있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지난 6월부터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로 매일 북적이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한 푼이라도 더 배정받기 위해 예산실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어깨에 별 두 개를 단 장군이나 나이 지긋한 실·국장급 간부들이 젊은 예산실 사무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읍소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여느 때보다 치열한 예산 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기재부는 이달 말 정부 예산안을 편성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다음달 초 국회에 제출한다. 올해 지출 예산은 656조6000억원이다. 작년 대비 2.8% 늘어난 것으로, 증가율이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올해보다는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도체 경기 회복 등에 따른 법인세 증가로 내년 재정수입이 올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입이 더 들어오면 지출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정부가 작년 9월 국회에 제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한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4.2%다. 소상공인 지원 예산 등을 합치면 증가율이 5%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출 증가율이 높아진다고 부처 사업예산이 일제히 늘어나는 건 아니다. 각 부처가 작년 1월 제출한 중기사업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 요구서 총액은 776조5000억원이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이 정부가 중기계획에서 제시한 4.2%라고 가정하면 지출 총액은 684조4000억원이다. 부처 요구액보다 기본적으로 92조1000억원은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내년엔 복구하기로 확정했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앞두고 저출생 대응 예산도 증액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는 올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기존 모든 예산 사업을 원점 재검토해 23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수준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래저래 내년 예산의 지출 구조조정 강도는 올해보다 훨씬 거셀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지금의 구조조정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정부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 예산을 매년 10% 이상 줄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야지만 지방교부금, 복지비 등 법으로 정해진 의무지출 증가분을 상쇄할 수 있어서다. 의무지출은 매년 20조원 이상 불어난다.

올해 재량지출은 국방비(59조원)와 공무원 인건비(44조원) 등 경직성 비용을 합쳐도 총지출의 47.1%인 308조원이다. 나머지 52.9%인 348조원은 의무지출이다. 4대 연금과 기초연금, 실업급여 등 복지 분야가 172조원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내세웠던 각종 선심성 복지공약이 재정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자체에 나눠주는 지방교부세와 교육청에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지방이전 재원도 139조원에 달한다.

정부 예산 구조조정이 의무지출은 놔둔 채 재량지출만 줄이는 방식이다 보니 각 부처의 신규 사업 예산 배정은 엄두도 못 낸다. 2027년까지 의무지출이 연평균 5.0% 증가하는 반면 재량지출은 2.0%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도 의무지출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한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교육청 등 이해 관계자들도 반발하는 탓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의무지출엔 손을 못 댔다. 윤석열 정부는 성역으로까지 불리던 R&D 부문을 ‘이권 카르텔’이라고 지목하며 올해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가 과학연구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재정 누수를 줄이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R&D를 홀대한다는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충분한 설명과 설득 과정 없이 추진하다가 큰 역풍을 맞은 것이다.

정부는 이런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엔 제대로 의무지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노동·연금·교육부문에 대한 3대 개혁을 본격 재개하는 것이 시발점이 될 것이다. 교육교부금 등 지방교부금의 성역도 깨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성패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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