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말하는 예술’ 서예(書藝)는 오랜 세월 동양미학의 정수로 불려 왔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던 개화기를 지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일제강점기를 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획을 그었던 대가의 글씨가 세상에 나왔다. 동농(東農) 김가진(1846~1922)이 남긴 200여 점의 서예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백운서경(白雲書境)’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하고 직접 전시 해설까지 맡은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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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유 교수는 “김가진은 서예 세계를 구축해 나감에 있어 추사 김정희가 강조한 고전에 깊이 들어가 새로운 걸 만드는 ‘입고출신(入高出新)’을 견지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통적인 서풍의 행서를 보여줬다는 점이 서예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을사늑약 이후 자진해 좌천 길에 오르고, 국권이 피탈되자 대한제국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74세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으로 항일투쟁에 나서는 등 부끄럼 없는 인간으로 살고자 노력한 정신이 글씨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슷한 서풍을 보여줬지만, 삶의 궤적이 올곧지 못한 이완용보다 김가진이 서예가로서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서예로 자기수양을 하면서 가족을 사랑한 김가진의 면모도 볼 수 있다. 아들의 첫돌을 기념해 써준 천자문과 교육을 위해 직접 쓴 한글 교재가 대표적이다. 이 중 한글 글씨체는 서울 현저동 독립문 현판석에 새겨진 글씨와 비슷한 만큼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까지 이완용으로 알려진 독립문 글씨를 쓴 주인공이 김가진임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서예계와 역사학계에선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당시 독립협회 활동을 같이한 김가진과 이완용 중 한 명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붓글씨를 쓰면 마제잠두(馬蹄蠶頭)라 해서 획을 그을 때 말굽과 누에머리 모양으로 쓰는데 동농의 글씨는 그런 게 없다”며 “독립문의 글씨체가 이와 비슷한데 필법 등으로 보면 김가진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9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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