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은 살 만큼 샀다"…요즘 잘나가는 '금수저룩'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4-08-05 14:15   수정 2024-08-05 14:25

“너무 빨리 성장하고 있어 브레이크를 밟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올 초 자사 소속 브랜드인 로로피아나를 두고 이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고급 패션 브랜드 로로피아나는 로고 없이 간결한 디자인과 최고급 소재를 특징으로 하는 초고가 제품들을 주로 판매해 일명 ‘억만장자를 위한 유니클로’로 불린다. 루이비통, 디올, 티파니앤코 등을 보유한 LVMH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양새지만 그중 로로피아나는 건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불황이 닥치면서 명품 소비도 사그라들고 있지만 '조용한 럭셔리'로 불리는 패션 업계 유행만은 지속되는 분위기다. 조용한 럭셔리는 국내에서 일명 '올드머니룩' 혹은 ‘금수저룩’이라고 불리는데, 브랜드 로고를 크게 드러내지 않아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지 알기는 어려우나 고급스러운 소재와 우아한 핏으로 '올드머니', 즉 대대로 부를 축적해 온 상류층이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을 칭한다.

팬데믹 기간 넘쳐나는 유동성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명품 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올 상반기 대부분 최악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LVMH는 올해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이 1%대에 머물렀다. 구찌, 생로랑 등의 모회사 케링그룹도 2분기에 11%에 달하는 매출 감소세를 기록했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찌 매출은 19%나 감소했다. 까르띠에를 보유한 리치몬트그룹, 영국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프랑스 명품 기업 에르메스는 불황에도 되레 호실적을 올렸다. 2분기 고정 환율 기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3% 증가했다. 중국 시장이 포함된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에서도 같은 기간 매출이 5.5% 늘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그룹도 2분기에 매출이 5% 늘었다. 이들은 명품 중 로고 없는 브랜드의 대표 주자로 꼽하는 업체들이다. LVMH나 케링그룹의 실적 감소세와는 대조를 이루는 양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 전반적으로 화려하고 튀는 옷보다는 단순하고 절제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는 추세” 라며 “블랙, 화이트, 베이지 등 채도가 낮은 색상을 중심으로 최상의 소재로 만든 클래식한 디자인이 핵심”라고 설명했다. 이어 “로고가 잘 드러나진 않지만 은근히 명품 브랜드의 특징을 살린, 대놓고 명품은 아니지만 명품 스타일임은 확실한 패션 기조가 수요를 끌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올드머니룩 트렌드의 배경에는 경기 불황과 이에 따른 소비 패턴 변화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가 한풀 꺾이고 경기 침체가 다시 도래하면서 부의 과시를 자제하는 소비 의식이 자리 잡았다. 화려하고 튀는 옷보다는 단순하고 절제된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데이터 분석업체 트렌달리스틱스에 따르면 작년 북미 지역 백화점이나 패션 전문점 등 소매업자들은 로고가 많이 들어간 제품을 전년 대비 40%가량 적게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드머니룩은 MZ(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MZ대가 가장 많이 애용하는 소셜미디어로 알려진 틱톡에선 ‘올드머니’ 관련 해시태그 게시물 조회수는 100만회가 넘는다. 인스타그램에서도 해시태그와 관련된 게시물 갯수가 10만개에 다다랐다. MZ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만 봐도 ‘굿파트너 장나라 올드머니룩’, ‘눈물의여왕 김지원 재벌 패션’ 등 조용한 럭셔리 룩에 대한 게시글이 많다.

명품업계에선 이 올드머니룩 열풍에 대해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마케팅협회 연구에 따르면 명품 브랜드에서 가격과 브랜드 인지도 간 관계는 '역 U자' 형태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브랜드는 더 작은 로고를 사용하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로고도 더 크고 눈에 띄게 되지만, 특정 가격대를 넘어서면 로고 존재감이 감소하고 조용한 럭셔리 기조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고가 명품이 강세를 보이면서 덩달아 올드머니룩 유행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올드머니라 불리는 부유층이 일반 대중은 잘 모르는 자신들만의 브랜드들을 찾기 시작한 데 따른 결과로도 풀이한다. 이미 순자산이 많은 고객들은 코로나19 기간 명품 호황기 동안 샤넬, 디올, 루이비통 등 눈에 띄는 로고를 가진 브랜드 제품을 “살 만큼 샀다”는 이야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패션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굳이 큰 로고 제품을 사지 않아도 명품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뉴머니룩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도 상당하다. 한동안 SNS에선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뉴머니(자수성가한 신흥 부자)’들이 기존 부자들과 동조하기 위한 심리로 로고 플레이가 성행했는데 이에 대한 반동 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패션매체 BoF는 “SNS를 통해 패션 지식을 충분히 접한 최근 고객들은 마르지엘라의 스티치나 구부러진 못 모양의 까르띠에 팔찌, 프라다의 역삼각형 로고나 디올 특유의 퀼팅을 로고 없이도 충분히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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