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몸에 얻어터진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여자. 이 여자 앞에 앉은 남자는 낡은 쿠키 깡통을 건넨다. 깡통 안에는 깡통만큼이나 낡은 헝겊으로 싸인 리볼버 한 자루가 있다. 한참 회전식 연발 권총을 바라보는 여자. 그런 여자를 응시하는 권총. 둘의 만남으로 여자의 운명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7일 개봉하는 영화 ‘리볼버’는 전작 ‘무뢰한’으로 수많은 누아르 팬을 거느린 오승욱 감독의 신작이다. 한국 누아르 영화의 산실 사나이픽처스가 내놓은 새로운 타이틀이기도 하다. 아파트 한 채와 7억원을 약속받고 모든 비리를 뒤집어쓴 전직 경찰 하수영(전도연 분)이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수영이 교도소에서 나와 자유인으로 복귀한 첫날을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늘 그렇듯 누아르 주인공은 세상 편할 날이 없다. 수영은 만기 복역했지만 눈앞에는 약속된 아파트도, 돈도,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경찰 동료이자 연인도 사라진 상태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수영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한 명씩 쫓으며 (혹은 처단하며) 돈과 아파트를 받아내는 과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영이 벌이는 격투와 대결에서 영화 제목이기도 한 ‘리볼버’는 실질적으로 자주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싸움에서 수영이 쓰는 무기는 전 사수에게 빌려온 3단 봉. 리볼버는 수영이 사용하는 절대적 무기가 아니라 일종의 맥거핀적 요소다.
나약하지만 치명적인 양가적 인물 수영과 관련해 배우 전도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수영은 약속받은 돈과 시간의 대가를 찾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뚝심 있게 수행하는 중심인물이다. 수영의 요구는 사랑과 연계된 것도 아니고, 탐욕에 의한 것도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당위적인 행위로 비친다. 이 같은 수영의 주체성을 장르적 색채 안에서 최대한 무자비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면, 전도연은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아닐까.
수영의 고행을 돕는 사이드 킥, 윤선 역을 맡은 임지연 역시 영화에 엄청난 에너지를 수혈한다. 그의 표정은 때로는 기괴하고 치졸하지만 사랑스럽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중심인물 모두에게 나름의 ‘해피 엔딩’을 부여하며 비교적 어둡지 않은 결말을 선사한다. 영화의 엔딩은 이 작품을 죽음과 회의주의가 난무하는 정통 누아르와도, 정통 복수극과도 거리를 두게 하는 지점이지만 동시에 리볼버만의 하이브리드적 감성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영의 캐릭터 스터디로도, 수영과 윤선의 버디물로도, 이들의 악당인 그레이스(전혜진 분)와 앤디(지창욱 분)의 컬트적인 존재감으로도 영화는 매우 만족스럽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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