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은 울고, 코미디는 웃었다

입력 2024-08-07 18:14   수정 2024-08-08 00:24


여름은 설과 추석,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극장가의 대목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스크린 앞으로 향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올여름에도 영화 회사들은 저마다 블록버스터급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흥행성적은 어땠을까. 결과적으로는 올여름 스크린 제전은 코미디의 승리, 스펙터클의 패배로 요약할 수 있다.

여름 시즌을 겨냥한 다섯 편의 대작 가운데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영화는 ‘하이재킹’(6월 21일 개봉)이다. 1971년 비행기 테러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총제작비는 140억원가량이다. 1970년대라는 시대 배경과 비행기 추락 신 등으로 블록버스터의 자질을 갖췄지만 손익분기점 300만 명을 크게 밑도는 177만 명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핸섬가이즈’(6월 26일 개봉)는 지금도 상영관을 지킬 정도로 롱런하고 있다. 험한 외모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두 남자의 소동을 그린 오컬트 코미디로 총제작비 49억원의 저예산(상업영화 기준) 프로젝트다. 개봉 초반 흥행순위 2위로 시작해 높은 관객 평점과 입소문으로 손익분기점 11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168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여름 개봉 영화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지난 7월 3일 개봉한 ‘탈주’는 주인공이 갖가지 위기를 넘기며 북한에서 남한으로 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100억원대 제작비를 투입한 작품으로 248만 명(손익분기점 200만 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하이재킹’과 ‘핸섬가이즈’가 극장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진입해 개봉일을 늦췄더라면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탈출: 사일런스 프로젝트’(7월 12일 개봉)는 올여름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높은 제작비(200억원대)를 썼지만 참패했다. 공항대교 붕괴와 암살견의 습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빈약한 스토리, 어설픈 컴퓨터그래픽(CG) 등으로 혹평받았다. 결과적으로 손익분기점 400만 명의 6분의 1 수준인 68만 명을 기록해 재난영화가 아니라 ‘재난’ 그 자체로 남게 됐다.

지난달 말 개봉한 ‘파일럿’은 뜻하지 않은 일로 해고된 파일럿이 여장을 하고 구직해야 하는 상황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탈주’와 비슷하게 총제작비 약 100억원, 손익분기점 200만 명으로 7일 현재 기준 204만 명이 다녀갔다. 영화의 단순한 콘셉트와 장르를 고려하면 2시간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느낌을 주지만 코믹영화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탈주’를 제외하면 코미디 영화들이 양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할리우드 대작도 스케일을 강조한 영화들은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 ‘퓨리오사’ 등이 관심받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한국을 제외한 세계 영화시장에서 예산의 네 배를 넘어서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부상으로 극장용 영화가 더욱 스펙터클하고 특수효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다른 모습이 연출됐다.

최근 한국 극장가에서 사랑받은 영화들은 스펙터클이나 블록버스터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장르적 색채가 분명한 ‘파묘’ ‘핸섬가이즈’ 등이다. 동시에 이들 영화는 작가주의적 성향이 지배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적어도 상반기의 흥행 성적으로 조심스럽게 진단해 보자면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저물고 작가주의와 퀄리티 시네마 시대가 도래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줄줄이 망하는 한국 영화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이 난세에 새로운 작가와 감독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에 텔레비전이 부상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고 뉴 할리우드가 탄생했듯, 한국에서도 뉴 웨이브가 일고 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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