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극장 소환된 박정희·전두환…'서울의 봄' 흥행 이을까

입력 2024-08-11 07:23  

8.15 광복절 전후로 색깔을 뚜렷하게 띤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현대사의 상징적인 인물들을 다룬 작품인 '행복의 나라'와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이 관객맞이를 준비 중이다. 최근 관객들은 극장에 가서 즉흥적으로 표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필람(필수 관람) 무비'만을 본다. 앞서 '건국전쟁'과 '서울의 봄'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영화가 진보, 보수 집결층을 넘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야만의 시대 고스란히 그린 '행복의 나라'
오는 14일 개봉하는 조정석, 고(故) 이선균 주연의 영화 '행복의 나라'는 10.26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과 전두환이 벌인 12.12사태를 관통하는 '재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간 대한민국의 큰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들은 많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려진 재판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은 '행복의 나라'가 처음이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암살한 날부터 시작된다. 당시 김재규의 부하 직원 몇몇이 함께 재판받고 처형된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들 중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 육군 대령도 포함돼 있다.

박 대령은 유일한 군인 신분이었기에 단심제가 적용돼 첫 공판 이후 단 16일 만에 최종 선고가 내려졌고, 이듬해 봄 형장의 이슬이 됐다. '행복의 나라'는 박대령을 모티브로 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연출을 맡은 추창민 감독은 10.26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중 여러 차례 법정에 은밀히 쪽지가 전달돼 이른바 '쪽지 재판'으로 불린 일을 큰 줄기로 전개했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이 재판을 도청해 쪽지를 보내는 등 권력 장악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 감독은 "충실한 자료조사 후 사실에 따라 각색을 진행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며 한쪽의 입장이 치우치지 않도록 경계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 영화는 12.12 군사 반란을 중심 소재로 사용한 '서울의 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시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사건 중심의 '서울의 봄'보다 인물의 감정선을 더 중요시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전상두(유재명)도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과는 차이가 컸다. 황정민은 뜨거웠다면 유재명은 차가웠다.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은 "시대의 상징 같은 인물"이라며 "딜레마에 빠진 사람을 더 큰 딜레마로 짓누르는 상징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만히 사람을 바라보는 눈, 삐딱한 고개, 소파에 기대앉아 모색하고, '한번 해 봐라.'라고 다정히 말하지만,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세력의 오만한 신념들. 그런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주어진 것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군부(하나회)라는 세력은 시대에 존재했던 하나의 흐름이자, 민주화를 갈망하는 개인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집단"이라며 "악마화로 상징되어 '나쁜 놈'이라 표현되는 관성적인 문법보다 시대의 야만성을 상징할 수 있도록 연기적인 갈망을 포기하며 표현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한국 영화에서 그 시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작품이 마치 기획된 것 같은 세계관으로 제작됐다"며 "시대 표현에서 자유로움이 생긴 점이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개봉돼 1000만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은 우익인사들로부터 '좌파 성향의 역사 왜곡'이라는 질타를 받은 바 있어 '행복의 나라'는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보수 인증 릴레이 시작되나…박정희 대통령 부부의 몰랐던 이야기
올초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누적 관객 수 117만 명을 모으며 이례적 흥행몰이를 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집결시켜 '인증 릴레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김흥국이 제작한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은 '건국전쟁'에 이어 보수층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살아온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6·25 전쟁, 산업화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다. 박정희 대통령의 삶과 당시 그를 둘러싼 사회상을 재연하는 첫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목을 끈다. 영화의 극장 개봉 예정일은 고 육영수 여사의 서거 50주년을 맞는 8월 15일 광복절이다.

지난 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의 영화적 평가는 '글쎄'다. 국민배우 고두심, 현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몰입감을 높였지만, 엉성한 편집으로 실소를 자아낸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기록 영상이 70%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영상을 받은 방송사 워터마크까지 수초간 드러날 만큼 빈틈을 보인다. 박 대통령 부부의 일화와 김구 선생 등의 이야기를 재연한 구간에선 배우들의 안타까운 연기가 눈을 절로 감게 한다.

앞서 국회 시사회에서 이 영화는 거센 질타를 받았다. 연출을 맡은 윤희성 감독은 "완성도가 떨어져 창피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 시사회를 할 때 어떻게 방향을 잡았으면 하는지 함께 이야기하며 완성도를 높여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들은 시사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보완한 버전을 심의에 올렸으며 개봉일인 15일 새로운 버전을 관객에게 공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 흥.픽쳐스를 설립한 김흥국은 제작비로 2~3억을 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후원 연락이 많이 왔는데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진보 쪽 역대 대통령은 다큐멘터리가 다 있더라. 그런데 보수 쪽 대통령은 '건국전쟁'과 우리 영화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스오피스에 다큐멘터리 장르 순위도 있던데 보수 다큐멘터리가 국민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 1위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역대 정치인 다큐멘터리 중 흥행 1위는 '노무현입니다'(누적 관객 수 185만 명)이다.

국회 시사회에서 "1000만 관객 들이대"를 외쳤던 김흥국은 파리 올림픽을 언급하며 "생각지도 않은 기적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 영화도 다큐멘터리 쪽에선 금메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긍정했다.

그는 "'건국전쟁'이 관객 수 100만 명이 넘어서 우리 영화에 1000만 명 언급이 나온 것"이라며 "다큐멘터리는 사실 10만 명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보수 쪽 영화가 만들어진 것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정치인을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개봉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공과를 균형감 있게 평가해 폭넓은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져야 오랫동안 흥행할 수 있고 회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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