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릴리의 반란…세기의 '비만약 전쟁'서 판정승

입력 2024-08-09 17:54   수정 2024-08-10 03:13

‘꿈의 비만약’으로 불리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약 시장에서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국 일라이릴리가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에 판정승을 거뒀다. 후발 주자로 진입해 추정치를 크게 뛰어넘는 올해 2분기 판매 실적을 거두면서다. 희비를 가른 것은 공급망이다. 국내에선 내년께 두 회사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라이릴리, 비만약으로 ‘깜짝 실적’

9일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릴리는 2분기 당뇨약 마운자로와 비만약 젭바운드로만 43억3400만달러(약 5조9000억원)를 벌어들였다. 마운자로만 출시된 지난해 같은 기간 9억7970만달러에 비하면 가파른 성장세다. 시장 추정치인 33억달러도 가뿐히 넘겼다.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성분명이 터제타파이드로 동일하다.

일라이릴리는 올해 연간 매출 전망치도 424억~436억달러에서 454억~466억달러로 30억달러 상향 조정했다. 비만약 시장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평가가 계속되는 이유다.

노보노디스크는 성분명이 세마글루타이드인 당뇨약 오젬픽과 비만약 위고비로 2분기 406억덴마크크로네(약 8조원) 매출을 올렸다. 미화로는 59억달러다. 일라이릴리엔 앞섰지만 시장 추정치인 64억달러엔 미치지 못했다. 극심한 공급난이 성장세의 발목을 잡았다.

GLP-1 계열인 터제타파이드와 세마글루타이드는 당뇨약으로 먼저 출시했다가 체중 감량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게 확인돼 비만약으로 나왔다.
○공급 해소 ‘릴리’, 아직 부족 ‘노보’
일라이릴리는 노보노디스크보다 후발 주자다.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과 위고비는 미국에서 각각 2017년 12월과 2021년 7월에 허가받았다. 마운자로 허가는 2022년 5월, 젭바운드는 지난해 11월이다. 출시 1~2년 만에 기존 주자를 위협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미국 암젠·화이자,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등이 비만약 후발 주자로 나섰지만 당분간 선두 그룹 지위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시간) 콘퍼런스콜을 통해 “다양한 질환군에서 임상시험 중인 물질만 11개”라며 “마운자로의 1상 주요 데이터가 나온 것은 8년 전인 2016년 12월”이라고 했다. 현재 임상시험 단계인 다른 기업과 격차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그는 주사제에 이어 먹는 약 시장에서도 승기를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 역량을 크게 늘린 것도 자신감을 키운 배경이다. 일라이릴리가 2020년 이후 미국 유럽 등의 공장 확대에 들인 비용만 180억달러가 넘는다. 이 덕에 공급난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일 마운자로·젭바운드 용량별 12개 품목을 모두 공급 가능 품목으로 공지했다.

위고비, 오젬픽은 약물 투여를 시작할 때 주로 쓰는 위고비 저용량(0.25㎎) 품목 공급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 8개 품목 중 나머지 7개는 지난 6일부터 유통 문제가 해소됐다.
○국내에서도 출시 사전 작업 돌입
국내 출시 속도도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회사 한국법인은 모두 “국내 출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물밑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최근 국내 의약품 유통사 등에 위고비 출시 예정 시기를 오는 10월로 전달했다. 이 약의 국내 유통은 노보노디스크의 이전 버전 비만약인 삭센다를 유통한 줄릭파마코리아가 맡고 있다. 블루엠텍 등도 온라인 유통에 뛰어들었다.

일라이릴리의 GLP-1 계열 비만약 국내 출시 예상 시점은 내년 5월께로 알려졌다. 허가 후 출시까지 1년가량 소요된 것을 고려하면 예상보다 이르다고 업계에선 평가했다
마운자로가 당뇨약으로 국내 허가를 받은 것은 지난해 6월, 비만약 허가는 지난 1일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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