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상속세율 인하는 세제 정상화다

입력 2024-08-12 17:37   수정 2024-08-13 00:14

세금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민간의 부(富)를 정부로 넘겨 누군가는 덜 쓰고 덜 저축하고 더 일하게 한다. 세금 역사를 보면 이런 일상 수준을 넘어 사람의 행동 자체를 바꾼 사례도 많다. 네덜란드 일본 베트남 등에는 지금도 폭이 좁은 집이 남아 있는데 이는 세금 탓이다. 한때 이들 국가에서 도로에 접한 너비로 재산세를 부과하자 납세자들이 이를 줄이려고 ‘좁은 로켓 같은 집’을 지은 결과다. 유럽연합(EU)이 1990년대 일반 담배보다 시가(여송연)에 낮은 세금을 매기자 ‘담배 같은 시가’가 속속 출시됐다. 소형 트럭보다 승용차에 높은 세금을 때린 칠레에선 화물칸을 개조한 승용차 대용 트럭이, 수입 승합차보다 수입 화물차에 높은 세금을 매긴 미국에선 승합차를 변조한 화물차가 등장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거운 세금이 잘못 설계됐을 때 납세자들은 늘 허점을 찾아 세금을 회피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때론 과세 대상 물건과 관련 시장이 왜곡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더 낮은 대체재의 세금이 있을 때 이런 현상은 더 쉽게 진행됐다. 본성에 가까운 이런 인간의 성향을 무시한 세제는 결국 실패한다는 교훈도 남겼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가깝게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2020년 ‘7·10 대책’을 내놨다가 실패했다. 다주택자 대상 양도세율을 최대 82.5%(지방세 포함)까지 높였지만 오히려 공급만 줄여 집값을 더 끌어올렸다. 상속, 증여, 양도는 내 재산을 남에게 넘긴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슷한 행위다. 생전에 또는 사후에, 유상으로 또는 무상으로 넘겼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양도세율을 증여세율(최고세율 50%)보다 훨씬 높게 올리니 다주택자들이 자식에게 증여를 늘려 시장에 주택 매물이 감소한 것이다. 집이건, 집을 팔고 받는 현금이건 결국 자식에게 갈 재산 아닌가.

국내 대주주 주식 관련 상속·증여 및 양도세제는 문제가 더 많다. 유독 대주주 주식만 할증(20%)해 최고 60%의 징벌적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이 세율이 양도세 최고세율(27.5%, 1년 이상 보유 기준)보다 훨씬 높아 대주주들이 각종 절세와 회피 행위를 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상속 대신 자녀가 설립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뒤(터널링) 이 지분을 판 돈으로 상속 대상 주식을 훨씬 싸게 사는 ‘세금 차익거래’를 하거나 사모펀드(PEF) 등에 경영권을 일찍 매각하고 상속세 없는 싱가포르 등으로 이주하도록 대주주들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상장 주식은 매일 변하는 시가로, 비상장 주식은 바뀌지 않는 자산·수익가치(본질가치)로 상속세를 계산하도록 차별해 상장사들이 세금 절감을 위해 주가를 최대한 낮추도록 유도하고 있다.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유다. 이런 문제는 설령 최고세율이 양도세와 같은 금융투자소득세가 내년에 시행돼도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올해 세법 개정안에서 상속세 자녀공제액 대폭 인상(1인당 5억원)과 함께 최고세율 40%로 인하 및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폐지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옳은 방향이다. 거대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처럼 ‘초부자 감세’라고 매도할 게 아니라 주식 상속·양도세제 전반을 정상화하는 조치로 봐야 한다. 상속세율을 양도세율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리지 않고선 터널링 등 각종 부작용을 근원적으로 줄일 수 없다. 본질가치로 상속세 과세, 기업 수익성과 지배구조 개선, 배당 증대 등도 병행돼야 하겠지만 이는 증시 밸류업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한국 증시를 언제까지 세금 탓에 폭이 좁아진 집처럼 왜곡된 형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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