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이직한 김대리, 회사에서 가명 쓰는 이유는

입력 2024-08-13 17:45   수정 2024-08-14 02:14


2022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메모리사업부를 그만둔 A씨는 1년 동안 휴식 기간을 거쳐 다른 반도체 회사로 이직했다. A씨는 이직 후 약 1년간 기존 이름 대신 브라이언으로 불렸다. 삼성전자 입사 시 맺은 ‘퇴직 후 2년간 전직 금지’ 약정 때문이다. A씨는 “경력이 짧은 책임급들은 3~6개월 정도, 부장급은 2년 정도 전직 금지 약정을 맺는다”며 “영어 이름을 사용하면 조직도에 이름과 사진, 전화번호가 공개되지 않아 전 직장으로부터 디텍(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전직 금지 위반으로 대기업과 소송을 벌이는 동료도 종종 나온다”고 귀띔했다.

가명을 쓰면서까지 직장을 옮기는 등 이직이 증가하면서 경업금지 관련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회사 직원이 경쟁 업체로 이직할 경우 핵심 기술이 유출되거나 영업 비밀 등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종과 규모도 가리지 않는다. 첨단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학원강사나 일반 영업사원 등도 경업금지 분쟁에 휩쓸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종종 발생하는 기술 유출 관련 분쟁이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선 올초 SK하이닉스가 자사에서 이직한 연구원을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20여 년간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설계 업무를 맡았다. 최근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HBM 후발 주자로 나선 경쟁사 마이크론으로 이직하자 기술 유출 의혹이 불거졌다. 이 연구원은 퇴직 후 2년간 마이크론 등 경쟁사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전직 금지 약정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실제 기술이 유출됐다면 넘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하는 전직 금지 기간은 통상 퇴직 후 1~2년이다. 근로자가 경업금지 약정을 어기고 이직했을 때는 기업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을 여러 이유를 들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70%까지 감액한다. 근로계약 당시 체결한 경업금지 약정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법원에선 경업금지 약정의 유·무효를 판단할 때 보통 1~2년 정도를 최대 기간으로 본다”며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최근엔 경업금지 약정 체결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해줬는지를 유효한 조건으로 보는 만큼 적절한 수당 지급을 고려해야 하고 경업금지 업무나 지역 범위를 특정해야 약정의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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