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사 발표 당시 대부분의 애널리스트가 윈윈으로 평가했다. LG화학 주주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알짜 사업을 떼내는 건 배신이라며 분노했다. 분리 방식인 물적분할이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좌파 시민단체와 언론도 대거 결집해 ‘대주주 횡포’라며 맹렬히 공격했다.
사실관계를 뜯어보면 왜곡과 오해가 많다. 소액주주가 손해 봤다는 주장부터 그렇다. 분사 발표 이후 LG화학 주가는 16개월간 63%나 올랐다. 물적분할·상장 발표 직후의 단기(10일) 주가도 코스피지수 상승률을 앞질렀다. 배터리 성공의 과실을 대주주가 독식했다는 비난도 근거 없다. LG화학 소액주주의 배당청구권은 확대(왕수봉·최재원, 2023년 논문)됐다. LG엔솔이 상장으로 수혈한 10조2000억원을 LG화학 내 사업부로 유지한 채 유상증자로 조달했을 때와 비교한 결과다. 무엇보다 LG엔솔이 단기에 글로벌 일류로 자리 잡은 점이 LG그룹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LG엔솔 사태 4년 만에 두산그룹이 동네북 신세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합병해 ‘스마트 머신’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구상을 발표한 한 달 전부터다. 그룹 캐시카우인 밥캣에 대한 대주주 지배력이 14%에서 42%로 높아지는 게 주요 비난 포인트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알짜회사를 꿀꺽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정위 권장사항이기도 한 ‘지주사의 자회사 지배력 확대’를 부당행위로 보는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다. ‘경영권 승계’를 범죄로 몰았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를 연상시킨다. 법원(1심)은 ‘승계 작업이 왜 위법이냐’며 검찰을 질타하고 14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6개월 전 일이다. 대주주에 유리한 합병 비율이란 불만도 과도하다. 자본시장법이 정한대로 ‘시가 평균’으로 결정됐다. 로보틱스는 고평가, 밥캣은 저평가된 점을 악용했다는 주장도 궁색하다. 정당한 밸류에이션은 신도 모르는 영역 아니던가.
소통 부족 등과 별개로 LG엔솔·두산밥캣 사태 모두 위법은 없다는 점을 금융당국도 인정한다. 그런데도 LG엔솔 쇼크 이후 ‘벼룩의 간을 빼먹는 재벌·대주주’라는 프레임이 점점 위세를 떨치더니 증시를 압도할 지경이다. 코리아디스카운트도 내 투자 실패도 모두 대주주 탐욕을 알리바이로 삼는다.
국민연금의 대주주 때리기도 만만찮다. LG화학 2대주주(10.2%)로 LG엔솔 물적분할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근거박약한 주장에 휘둘리고 말았다. 다행히 다른 주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 82.3%의 높은 지지율로 통과됐다. 뒷맛이 쓸 수밖에 없는 ‘연못 속 고래’의 일탈이다.
1500만 개미투자자의 표심을 감지한 정치권의 숟가락 얹기도 본격화됐다. “재벌 회장이 주인인 듯 행세한다”며 규제입법을 쏟아내고 있다. 분할·합병, 자산 처분·양도 등에 대주주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는 막가파식 법안까지 발의했다. ‘1주=1표’라는 절대원칙을 뒤흔들 태세다. 법적 정합성을 못 갖춰 사실상 무산된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 카드를 재차 꺼내 들었다.
금융당국마저 부화뇌동 조짐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두산그룹의 증권신고서 ‘무한 반려’를 시사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검사 출신 관료가 기업의 구조개편을 막아선 격이다. 불안하면서도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증시 내 대주주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적잖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집단적 악으로 상정해 사사건건 발목 잡는 행태는 자해적이다. 대주주에 대한 과잉 공격이야말로 대주주 횡포 못지않은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K팝·K푸드·K드라마 이전에 ‘K기업’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류도 없었을 것이다. 공공의 적이 된 대주주·대기업이야말로 K기업을 일궈내고 이끄는 주역이다. LG·두산과 같은 과감한 도전과 리스크테이킹은 K기업의 성공문법이기도 하다. 대주주라는 단어에 어느새 덧씌워진 멸칭의 뉘앙스를 걷어내는 일, 밸류업의 주요 목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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