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재무제표 외 지속가능성제표를 공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은 재무정보 외 환경, 사회, 거버넌스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지난 4월 30일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은 의견 수렴을 거쳐 한국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이 될 것이다.
공시기준 초안을 보면 사회 부문은 제101호 ‘정책 목적을 고려한 추가 공시사항’에 들어 있다. ▲가족 친화 경영 확산 ▲강제노동 예방 ▲안전 경영 ▲종업원의 다양성 ▲기업 간 정당한 경쟁 추구 ▲인권 경영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 공시 여부는 기후 공시와 달리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의무 공시가 아니다.
공시기준에 영향중요성 빠진 게 원인
왜 사회 부문이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 이번 공시기준 초안은 유럽, 중국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중중요성이 아니라 재무중요성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중중요성은 어떤 사안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① 기업이 환경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영향중요성) ② 환경·사회의 변화가 기업의 재무에 미치는 위기와 기회의 관점(재무중요성) 2가지를 본다.
우리 공시기준 초안은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공시’로 규정해 영향중요성을 배제하고 있다. 재무와 비재무를 함께 공시하라는 지속가능성 공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투자자만을 정보 이용자로 보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좇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한국 기업이 채택하는 국제적 보고 표준인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는 영향중요성 관점을 지니고 있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지속가능 사회를 목표로 하고, 기업의 성장과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영향중요성의 관점을 포함시켜야 한다.
공시기준 초안, 사회부문 공시 선택에 맡겨둬
공시기준 초안의 사회 부문 공시는 선택 사항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일본은 물론 중국, 베트남 등도 이미 사회 부문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사회 부문을 포함해 공시하고 있는데도 이 부문 전부를 선택 공시로 돌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 지속가능성 공시의 사회 부문은 ▲자체 인력 ▲가치사슬 노동자 ▲영향받는 지역사회 ▲소비자 및 최종 사용자를 주제로 삼고 있다. 우리 공시기준 초안은 자체 인력 이슈만을 공시 대상에 포함하고 가치사슬(공급망), 지역사회,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관련 사안은 포함하지 않는다.
또 GRI, 유럽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 등은 공시에 실사(due diligence)를 결합하고 있다. 부정적 영향, 위험과 기회를 관리하고 이를 공시하도록 하는 지속가능성 공시 목적상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이를 완화·예방하며 설명하는 프로세스’인 실사와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공시기준 초안에는 실사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인권 경영 항목에서도 인권 실사 프레임워크를 온전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025년 회계연도부터 강화된 공시를 해야 한다. KSSB 공시기준 초안은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공시 대상을 축소한 것으로 보이나, 자칫 국제적 흐름에서 뒤처져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미 자발적으로 지속가능성 보고를 해온 한국 기업의 관행보다 못한 것이다.
기업의 부담이 문제라면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여러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쪽짜리 공시가 되면 우리 기업은 오히려 준비할 시간을 놓치게 된다. 국제사회 및 글로벌 공급망에서는 지속가능성 이슈가 무역과 통상의 주제로 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무시하는 기업은 국제 거래에서 배제되는 시대다. 공시를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 방법으로 생각해야 한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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