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성 "아버지 같은 김민기, 무대 오를 때마다 '오늘도 해내겠다' 생각" [인터뷰②]

입력 2024-08-19 08:05  


([인터뷰①]에 이어) 배우 정문성이 고(故) 김민기를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지난달 21일 세상을 떠난 가수 김민기는 30여년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왔다. 학전은 배울 학(學)에 밭 전(田)이라는 뜻대로 오랜 시간 국내 공연예술인들의 못자리가 되어줬다. '학전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김윤석, 조승우를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학전을 배움터로 삼아 성장했다.

정문성도 배고팠던 시절 학전에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2007년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데뷔한 그는 현재 연극·뮤지컬 무대는 물론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도 출연하며 활발히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만난 정문성은 "요즘 그때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김민기 선생님이 아프실 때 학전에서 콘서트를 했다. 잠깐 가서 공연도 했었다. '지하철 1호선' 끝 무렵 기수라서 그쪽에 가면 내가 막내 수준이다. 다들 나이가 너무 들었더라"라면서 "선생님도 한 번 찾아뵌 적이 있다.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정문성은 과거를 회상하며 "조연출 형님한테 '좋은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그 형님이 '나도 잘 모른다. 근데 누가 같은 일을 10년 동안 해서 버티면 그 이후로 먹고살 수 있다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10년을 버티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하철 1호선'을 할 때 김민기 선생님께서 꼭 차비랑 밥 한 끼는 주셨다. 그러고 한 끼를 더 사 먹으면 아무리 아껴 써도 차비가 없었다. 하지만 10년을 버텼더니 진짜 버스나 택시 타고 가끔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하면서 살 수 있더라"고 덧붙였다.


특히 학전에서 배우로서 갖춰야 할 기초를 많이 쌓았다고 돌아본 그였다.

정문성은 "학전에서 판소리도 배웠다. 뮤지컬을 하는데 왜 목에 핏대 세워가며 피 토하는 소리를 배워야 하나 싶었는데 김민기 선생님이 '배우가 무대에서 노래해야 하는데 소리가 안 나오면 악을 써야 한다'고 하더라. 악이라도 써서 관객한테 내 감정, 마음, 전달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거였다"고 전했다.

그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고 부족해도 어쨌든 무대 위 배우는 항상 해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요즘 무대 들어가기 전에 항상 '선생님 오늘도 제가 해내겠습니다'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때 이걸 까먹고 소리를 지르는데 목이 아프면 지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다시 옛날처럼 열심히, 바보처럼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정문성은 현재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에 출연 중이다. 이 작품은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가난한 청년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문의 백작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과정을 그린다.

극 중 정문성은 다이스퀴스 후계자 역을 맡아 총 9명의 배역을 소화한다. 15초 만에 의상, 가발, 분장 등을 바꾸는 '퀵 체인지'를 통해 은행장, 성직자, 자선사업가, 배우 등 1인 9역을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공연은 오는 10월 20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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