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부터 9월 첫째주까지 한국은 ‘세계 미술의 중심’이 된다. 지구촌에서 가장 큰 미술 행사인 KIAF-프리즈 서울(4~7일)과 광주비엔날레(7일 개막)가 동시에 열리면서다. 국내 미술 애호가들이 전시 보기 가장 좋은 시기도 이 때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역량 과시를 위해 ‘간판 작가’들로 멋드러진 전시를 꾸미기 때문이다. 대개는 국제 무대에서 잘 알려진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하지만 이런 전시를 본 해외 미술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미적지근하다. “기껏 한국까지 왔으니 유명 작가들보다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유망 작가들을 원한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 미술관과 갤러리에게 신진 작가 전시를 강요할 수도 없다. 수요는 있지만 공급은 없는 상황.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가 직접 나서서 ‘한국 미술의 내일’을 보여주는 전시를 열게 된 이유다.
‘한국 미술 얼굴’, 어떻게 뽑혔나
지난 16일 서울 가회동의 한옥 휘겸재에서 개막한 ‘다이얼로그:경계인간’은 국내 신진·중견 현대미술 작가 7명의 작품을 전통 한옥에서 소개하는 전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삼청동 일대는 인기 관광지이자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이 운집한 미술 1번지”라며 “KIAF-프리즈 기간 한국 작가들을 소개할 가장 좋은 위치”라고 설명했다. 그 말대로 개막일 찾은 이곳에는 외국인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삼청동 일대를 구경하다 한옥 공간과 현대미술의 조화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한국에서 본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대표 선수’들은 기슬기 람한 신교명 오제성 윤향로 이병호 한석현 등 30~40대 작가 총 7명. 후보군에 오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문체부와 예경의 ‘전속작가제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만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유망한 작가와 중소 화랑에 홍보비와 창작활동비 등을 3년간 지원하는 게 골자다. 2019년 시행 이후 총 343개 갤러리와 645명의 작가가 혜택을 받았고, 관련해 판매된 작품 수는 총 2876건(약 82억3500만원 상당)에 달한다.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단 얘기다. 그러니 지원을 받으려는 작가들의 경쟁률은 10:1을 넘을 때도 있다. 지금은 작가 169명이 참여 중이다.
그 중 가장 유망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우수 작가들을 국내외 미술계 주요 인사 5명이 뽑아 전시를 꾸몄다.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감독이었던 이대형 에이치존 대표, 케이 왓슨 서펜타인 미술관 예술 기술 책임자 등이 참여했다. 문선아 문화역서울 284 책임 큐레이터는 “유행이 어떻든,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온 작가들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윤향로 작가의 추상화를 출품한 김현민 갤러리띠오 대표는 “좋은 작가를 해외에 본격적으로 소개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며 웃었다.
세계적 큐레이터 매칭까지
아무리 미술작품이 훌륭해도 그 가치를 말과 글로 잘 옮기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다. 문체부와 예경이 참여 작가들과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등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큐레이터를 하나하나 짝지어준 이유다. 이들은 각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작성하고 해외에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홍보대사 역할을 맡았다.
이번 행사로 참여 작가들이 기업 후원을 받을 가능성도 열렸다. 기업이 3년간 작가에게 창작지원금을 주는 한국메세나협회의 ‘1기업 1미술작가 지원사업’과 연계한 덕분이다. 이미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은 윤향로 작가를, CJ문화재단은 오제성 작가를 후원하기로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한국 신진 작가들이 전속작가지원제도를 통해 뿌리를 내렸으면 한다”며 “박서보, 이우환 등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작가들이 탄생하는 걸 돕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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