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계 등 7개 구리 스크랩 밀수출업자 '일망타진'

입력 2024-08-20 17:07   수정 2024-08-20 17:17


지난 4월 11일 오전 10시. 경남 김해, 경기 화성, 평택 등 중국계가 다수 포함된 전국의 7개 구리 스크랩 수집상에 부산본부세관 조사국 직원 40여 명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사전 답사차 전날부터 잠복했던 수사관과 포렌식 요원들은 컴퓨터와 휴대폰, 장부 등 핵심 증거를 확보했다. 고철 스크랩으로 위장해 중국 등으로 밀수출하려면 구리 스크랩 49t도 압수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한국경제신문의 <銅맥경화…中 수집상, 고물상 돌며 구리 스크랩 '싹쓸이'(3월22일자)> 보도 이후 실태 파악에 나선 부산본부세관이 주도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동현 부산본부세관 조사국장은 20일 “서류 증거인멸 등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한날한시에 전국적인 압수수색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밀수출·비트코인 환치기로 시장 교란
전선과 파이프, 건축자재, 전자제품 등의 소재로 쓰이는 구리 스크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에 무더기로 팔려나가면서 올해 초 국내 제조업체들은 극심한 공급부족에 시달렸다. 지난해 1년간 중국으로 수출된 구리 스크랩은 6만7043t으로 2020년(1만6340t)의 4배가 넘을 정도였다. 무자료 현금 거래로 국내에 유통되는 스크랩을 대규모로 사들인 뒤 수출하는 중국계 대상(大商) 등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탓이었다. 부산본부세관은 본지 보도 시점 이전 4개월간 고철, 구리 스크랩을 2000t 이상 수출한 28개 업체를 파악한 뒤 이중 혐의가 의심되는 7곳을 선별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른 관세법 위반 공소시효 기준을 고려해 이들 7개 업체의 총 5년간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구리 스크랩 가격의 15% 안팎인 고철 스크랩으로 품명을 속여 밀수출한 구리 스크랩은 총 1만2970t(998억원 어치)으로 나타났다. 다운계약서를 쓰듯 수출 시 단가를 낮게 신고한 가격 조작 물량도 5만5078t(3743억원 어치)에 달했다. 이들은 등급에 따라 kg당 7.61~8.69 달러 수준인 구리 스크랩 가격을 kg당 0.3~1.2달러로 신고했다. 저가 조작해 누락한 매출(수출)액 3743억원에 법인세율 최저구간 19%(2억 초과분)를 적용시 711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탈루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통한 환치기 목적의 자금세탁 규모도 1392억원에 달했다. 현재 서울과 인천, 광주 등 6개 본부세관은 수출 검사체계를 바꿔 통관 우범성 기준에 따라 선적을 앞둔 고철이나 구리 스크랩의 불시검사 비율을 높이고 있다.
◆“거래가격 내리고 수급에 숨통 트여”
국내 구리 스크랩 수급은 정부의 수출 단속 등에 힘입어 안정세로 돌아선 상태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기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으로 수출된 구리 스크랩은 총 2만2085t, 수출 단가는 1.1달러였다. 세관의 조사가 본격화된 2분기 수출량은 1만6433t으로 감소했다. 다만 밀수출 업자의 가격 조작이 어려워지면서 수출 단가는 오히려 4.3달러로 올랐다. 국내 구리 스크랩 수집상 관계자는 “중국계 거래상들이 정상적인 계산서를 끊고 스크랩을 거래하면서 가격이 정상화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때마침 글로벌 수요 감소세도 영향을 미쳤다.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구리 시세는 지난 3월 t당 8500달러 안팎에서 5월 20일 t당 1만1104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향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구리 스크랩 거래가격도 안정세다. 연초 LME 기준 약 96%까지 치솟았던 상동 스크랩 가격은 최근 90~93% 구간에 형성돼 있다. 황동을 만드는 D사 관계자는 “구리 수요가 늘 것이라고 베팅했던 글로벌 펀드가 발을 뺀 데다, 중국의 건설경기 부진 등이 겹치면서 수급과 가격의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한국비철금속협회 본부장은 “(최근 안정세는) 정부 단속의 효과와 글로벌 수요 감소가 각각 절반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 제조업계는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무자료 거래가 불가피한 스크랩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구리 스크랩 업계 관계자는 “이번 압수수색 여파로 중국계 수집상들이 휴대폰을 모두 비밀번호 추적이 어려운 아이폰으로 바꿨다”며 “정부의 감시가 느슨해지면 또다시 불법 매입과 밀수출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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