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희대의 흉악범 김국호(유재명)의 목숨에 200억 원의 공개살인청부가 벌어지면서 극중 인물들 모두 치열한 경쟁을 하며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극중 백중식은 몇백만을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지질한 모습부터 흉악범 경호라는 경찰로서의 정의감과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오가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 절반 가량이 공개된 지난 14일 배우 조진웅을 연남동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또 경찰이다. 이번 경찰은 '생활밀착형'이라고 표현하던데.
"사기를 당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데 10억원을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건가, 난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경찰이라고 해서 그런 유혹이 없을까. 실제로 형사들은 줄곧 그런 얘기를 한다. 우리는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사람들이다, 라고. 살짝 이쪽으로 가면 교도소고 반대쪽은 현실인데 자신들은 그 경계에서 산다는 것이다."
▷극중 백중식은 회차를 거듭하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형사로서 강인해진달까?
"중식을 비롯해 모든 캐릭터들에게 각자의 상황에서 극한의 조건이 계속 생기다 보니 온갖 본성들이 튀어나오는 격이다. 그걸 관전하는 게 이 작품의 포인트다. 초반 2부에서 10억원을 중식이 가져가지 않았다면? 작품은 그걸로 싱겁게 끝났겠지(웃음).
사실 경찰이 장물 10억원을 훔쳐가는 건 엄청나게 심각한 범죄 아니겠는가. 근데 10억원을 한번에 쓰진 않더라. 일단 이자부터 갚고(웃음). 아주 나쁜 형사는 아니지만, 용납은 안되는 인물이다. 초기 설정이 그렇기 때문에 회가 계속되면서 다른 모습으로 그 전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故 배우 이선균이 백중식 역을 맡기로 했지만, 촬영을 앞두고 급하게 교체됐다. 부담은 없었는지.
"더는 이 작품이 흔들리지 않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내겠다는 포부로 직진했다. 당시 (이선균으로부터) 이 작품 맡아줘서 고맙고 너무 든든하다고 연락받았다. 8부짜리 대본을 하루 만에 쭉 봤을 만큼 재밌게 읽었다.
게다가 재명이 형을 비롯해 무열이 광수 허광한, 정아 누나…. 수많은 명배우들이 대기하고 있고, 스텝 제작진 모두 같이 작업해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다르게 판단할게 뭐 있겠나 싶었다. 고민없이 결정했다."
▷준비 과정, 촬영 과정은 어땠나.
"추격전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드라마상에서 추격을 정말 많이 한다. 제대로 된 액션을 하면 중요 장면은 대역을 쓰는 편인데 여기에서는 생활밀착형 형사이기 때문에 그냥 헉헉 대면서 나대로 하는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근데 그게 참 힘들었다.(웃음) 제작진이 장소 헌팅에 정성이 상당했다.
극중 배경인 호산시가 잘사는 동네가 아니다. 보면 알겠지만 나오는 집들이 대개 다 허름하다. 서울 어디 외곽 지역이었고 세트가 아니고 실제로 다 로케로 찍은 것이다. 그리고 초반에 나오는 오르막 길 있지 않나. 그 오르막길 끝이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이지안(아이유)이 살던 집이더라. 골목길이 워낙 협소하니까 조명기가 못들어 갈 정도였다. 그러데 그런 부분이 드라마의 사실성을 확 높였다."
▷오징어게임, 에이트쇼, 머니게임 같은 돈과 인간의 군상을 다룬 작품들이 인기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인간의 본성을 드러나게끔 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살 것 같은 교회 목사도 그러지못한 경우가 더러 있다는 식?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다'는 제목의 의미처럼 모든 캐릭터가 갈 데가 없다.
사실 다들 갈 때 까지 간 거다. 형사도, 가면남도. 그런 여러 요인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여러 상황과 잘 연결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점이 좋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전혀 갈 데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우리 영화산업도, 극장도 마찬가지고. 다들 요즘 너무 힘들어 하지 않나. 그런 밑바닥 심정들을 담고 있어서일 것이다."
▷쟁쟁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유재명 엄정아 김무열 등 개성이 강한 사람들인데 분위기는 어땠나?
"글쎄. 다들 이런 식이었다. '일단 던져 봐' 그럼 내가 알아서 다 받아줄 게. 너무들 잘 맞았다. 다들 집에서 나와 현장에서 며칠씩 있으면서 하는 이유가 작품 하나 잘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각자의 자존심 같은 거 내세울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당한 다작 배우다. 한국 영화의 대표 흥행작도 상당히 많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조직 보스 김판호 역을, '암살'에서는 생계형 독립투사 속사포 역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는 변태 백작 코우즈키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임팩트가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다. ‘아가씨’의 코우즈키 역할 특히 기억에 남는다. 최근 작품 '데드맨'이나 '소년들'은…흥행 면에서 아쉬웠다.
"코우즈키만 따로 스핀 오프를 만들면 어떠냐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긴 하더라. 작품이 잘되면 좋은데 잘 안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다. 작품의 흥행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데드맨’도 괜찮은 작품이었는데 코로나도 있었고 편집도 좀 바뀌게 되는 일들이 생기면서 아쉬운 결과가 됐다. 사실 작품 고를 때 딱히 선구안은 없는 편이다. 그냥 누구 만나고 있는데 '감독이 온다' 그러면 '아냐, 아냐' 하다가 감독이 '너가 꼭 해달라'고 하고 절실하다고 느껴지면, 그러면 그냥 하는 성격이다. 난 부산 사람이다. 복잡한 거 싫어한다. (웃음)"
▷뿌리깊은 나무, 시그널 이후 중요한 드라마 작품이 된 것 같다.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될 작품이라 생각하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회에 화두를 던질만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한다. 이번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어쩌면 법의 관용성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엄청난 클리셰가 덩어리라는 거다. 그런 일본 말도 있다는 걸 안다. 우라… 좋은 말로는 오마주라고 하면 될까.(웃음)"
▷아무튼 곳곳에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레퍼런스가 많이 들어있다. 뻔하지만 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부패 형사인데,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측면이 있는 것도 어디서 본 것 같고, 마구 추격하는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안성기 박중훈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교통 정리가 잘 되게끔 연출이 영리하게 해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지막 회차는 약간 슬플 것이다. 우리 모두 저렇게까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비질란테'의 세계관, 그러니까 자경단과 같은 이야기다. (법의 한계와 부조리함에 저항해서 사적인 제재를 가할 경우 또다른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에서 태어난 조진웅은 대학시절 연극 무대에서 10년간 발로 뛰었다. 이후 '말죽거리 잔혹사'(2004)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20여년 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 배우의 길을 향하던 조진웅이 조만간 연출자로 변신한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도 '야수'(YASOO)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름이다.
▷여기 저기 야수 프로젝트를 알리고 있던데
"내가 처음으로 제작과 연출을 하는 작품이다. 1년 8개월 정도 준비해 오고 있다. 1970년대 배경의 크리처 판타지물이고, 장르 특성상 돈이 좀 많이 들 것 같다. 현재 캐스팅과 프리 프러덕션 들어가기 직전이다. ‘데드맨’의 하준원 감독에게 조언을 부탁해달라고 하니까 딱 첫 마디가 그거 더라. '(이런 건) 미쳐야 한다'고.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거의 1년 넘게 다른 작품 출연을 고사해왔다. 미쳐야 하니까! 처음 영화 원작을 샀을 때는 여러 편의 시리즈 물을 제작해보고 싶다였는데 언제부턴가 연출도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직접 연출을 하겠다는 배우들이 꽤 있다.
"현장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럴 것이다.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매뉴얼이 막 떠오르니까. 왜 안 만들지 싶은 생각이 들게 돼서일 것이다. "
▷배우로서는 리스크도 크다
"'야수' 프로젝트는 지금 아니면 안 된다. 더 묵어서는 안된다. 얘기된 지 5년 넘은 작품이다. 더 시간을 끌면 사라지게 된다. 시나리오가 너무 오래되면 지나간 방송 보듯 안 봐지게 되니까. 이 작품만은 직접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계획적으로 간다면 2026년 스트리밍 하는 게 목표다."
▷1976년생이다. 그때쯤 50세이다.
"배우 일을 하다 보면 나이 먹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데 자꾸 건강검진 이런 문자가 오더라. 몇세 이상 대상이라는 그런 거.(웃음)"
▷롤모델을 꼽자면 누군가
"설경구 선배. 그는 자신이 나의 롤 모델이 되는 걸 반대할 수 있지만(웃음). 어릴 때부터 팬이었다. 1998년에 군대가 있을 때였는데, 휴가를 나와서 지금 사라진 학전, 거기서 연극 '지하철 1호선'을 봤다. 와, (그때의 설경구는) 무대에서 발이 안 붙어있더라 날아 다니더라. 저 배우 누구지 하다가 공연이 끝났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커튼 콜이 끝나고 설경구 선배와 악수도 하고 그랬다. 설경구처럼 되고 싶다. 아직도."
최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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