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업의 주류가 된 인플루언서, 그 명과 암[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4-08-26 08:26   수정 2024-08-26 08:27


“당신의 관심을 받아 탄생했으며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지칭한 ‘사람들’은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답을 듣고 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정답은 ‘인플루언서’이다. 지난 8월 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더 인플루언서’는 오프닝에서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에 대해 이같이 소개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유튜브부터 시작해 인스타그램, 틱톡, 아프리카TV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시시각각 수많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접하고 감상하고 있다.

‘더 인플루언서’에 나온 77명의 인플루언서이자 크리에이터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새삼 놀라게 된다. 먹방부터 여행, 뷰티, 운동 등 출연자들이 다루는 콘텐츠만 해도 각양각색이다. 더 놀라운 것은 구독자 수이다. 이들이 각각 목에 찬 장치엔 자신 채널의 구독자 수가 표시되는데 수백만, 심지어 수천만에 달한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이들이 대거 나온 만큼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더 인플루언서’는 공개 직후 국내에서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해외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

이제 인플루언서를 빼놓고 영상 콘텐츠 시장 얘기를 할 순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들이 콘텐츠 시장의 주류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만드는 콘텐츠, 그 안에서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능 ‘더 인플루언서’ 비롯해 드라마 ‘셀러브리티’(2023), 영화 ‘그녀가 죽었다’(2024) 등 인플루언서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콘텐츠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콘텐츠 시장뿐만 아니다. 인플루언서가 먹는 음식, 입은 옷, 바른 화장품, 사용하는 전자 제품 등은 불티나게 팔리며 매진 행렬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 유통업, 식품업 등 모든 산업에 걸쳐 이들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향력이 곧 돈값이 되는 인플루언서’라는 ‘더 인플루언서’의 프로그램 소개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 구독자 수는 곧 돈이 된다. 그 경쟁이 심화하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다.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기 전, 이 시장 전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가 된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는 온라인에서 높은 인지도를 쌓고 인기를 얻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라는 단어 자체가 ‘영향력’이란 뜻의 ‘influence’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를 결합한 것이다.

인플루언서의 양산은 영상 플랫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맞물려 이뤄졌다. 특히 2008년 유튜브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들은 시장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유명 연예인 등이 차지한 주류 시장에서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하거나 굳이 다루지 않는 영역을 보조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젠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인플루언서 한 명, 한 명이 개별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 즐거움은 시시각각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어 대한민국 시장 전체를 움직이고 있다. 산업 영역을 불문하고 각 기업들은 효과적 마케팅을 위해 인기 인플루언서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인플루언서가 국내에서 환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호모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문화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전시킨 유희적 인간을 ‘호모루덴스’라 칭했다. 국내에서 호모루덴스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연예인과 방송인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일반인도 얼마든지 ‘잘 놀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대중과 직접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나만의 취미를 갖고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장벽도 없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은 천편일률적인 콘텐츠 시장에서 다양성을 높이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먹방’ 감상은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을 보며 대리 만족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1인가구가 증가하는 등 ‘혼밥’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먹방이 사람들의 새로운 밥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 2013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eating show’가 아닌 ‘Mukbang’으로 등재된 배경엔 이런 사회적 의미까지 반영되어 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된 여행 콘텐츠 역시 콘텐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정형화된 경로나 방식에 국한됐던 TV 여행 방송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롭고 다양한 여행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곳곳을 영상으로 즐기는 기쁨도 선사했다.
‘어그로’에 매몰된 4000억 시장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4년 현재 국내 인플루언서 시장은 4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커지자 더욱 많은 인플루언서가 등장했고 덩달아 위험 요인도 늘어났다. 인플루언서 간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점점 자극에 자극을 더하는 콘텐츠가 많아진 것이다. 단 몇 초 만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다 보니 ‘어그로(aggro·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것)’ 끌기는 어느새 관행이 되어버렸다. 선정적 이미지와 행동을 내세우거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 모방 위험까지 커지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직 자아가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과 인플루언서 간의 관계가 더욱 가깝고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0대들 역시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유튜브, SNS 등에서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적극 감상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카드 등을 이용해 인플루언서의 든든한 후원자까지 자처하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유튜브 슈퍼챗 기능을 통해 유튜버에게 후원하는 사람들 중 20% 이상이 1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대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엔 10만원 이상도 선뜻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그만큼 인플루언서가 10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으며 심리적 영향을 크게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해 콘텐츠가 늘어난다면 사회적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10대들이 유해 콘텐츠를 보지 못하게 막아놓는다 해도 사실상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보니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쳐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얘기는 국내에서 온라인 블로그 등을 통해 알려진 말이다. 블로그 등엔 팝아트의 대가이자 자기 마케팅의 달인이었던 앤디 워홀이 한 말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워홀은 실제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자극적인 이 얘기가 국내에서 생겨나 계속 확산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인지도→영향력→돈이라는 연결 고리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세태 말이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남의 삶을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 정태(변요한 분)와 ‘관종’(관심 종자의 줄임말) 인플루언서 소라(신혜선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처럼 현실에서도 어느새 ‘사회적 관심’이라는 것이 관음증 환자의 양산 또는 도를 넘어선 관종의 출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급히 제도와 정책 마련이 이뤄져야만 이토록 깊어져 가는 어둠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엔 무엇보다 인플루언서와 대중 쌍방의 자정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자신만의 숨은 끼를 발산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플루언서의 순기능이 강화되고, 해당 콘텐츠를 즐겁고 건전하게 소비하는 대중의 지지가 병행된다면 이 시장은 성장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호모루덴스의 탄생과 발전에 힘입어.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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