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진정한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야심차게 선보인 '캐스퍼 일렉트릭'이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발목이 잡혔다. 뛰어난 상품성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저가 소형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를 계획했으나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에 찬물이 끼얹어진 셈이다.
23일 현대차에 따르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지난달 9일부터 사전 계약을 시작했으며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출고를 앞두고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기존 캐스퍼 대비 휠베이스를 180mm 증대해 2열 레그룸 공간을 넓혔다. 또한 트렁크부 길이를 100mm 늘려 기존 233ℓ 대비 47ℓ가 늘어난 적재 공간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49kWh의 NCM 배터리를 탑재해 315km에 달하는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자랑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보조금을 감안하면 2000만 원대 초중반에 구입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업계에서는 합리적인 가격, 선호도 높은 디자인, 준수한 주행 거리 등을 갖춘 캐스퍼 일렉트릭이 최근 부진한 전기차 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지난 1일 인천 청라에서의 벤츠 전기차 이후 연이은 화재 사고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앞서 1일에 인천 청라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EQE 화재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 6일 충남 금산에서 기아 EV6, 16일 경기도 용인에서 테슬라 모델X 화재 등 국내 각지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완성차업체들은 화재 사고 이후 전기차 모델별 배터리 제조사 공개 등 우려 해소를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나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는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네티즌은 캐스퍼 일렉트릭의 사전예약을 취소했다고 밝히면서 "전기차 살 용기가 없어졌다"며 "퇴근하면 지하주차장밖에 주차할 여유가 없는데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까봐 예약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자사 전기차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우선 완성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가장 먼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기술인 '배터리 관리 시스템'(Battery Management System)을 공개하고 이는 배터리 이상 징후를 탐지하면 즉각 위험도를 판정, 차량 안전 제어를 수행한다고 소개했다.
또한 배터리 충전량과 화재 발생은 관계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안전성이 검증된 범위 내 배터리 충전 용량이 산정된다며 실제로 소비자가 완충을 하더라도 전기차 배터리에는 추가 충전 가능 용량이 존재한다는 게 현대차·기아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화재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은 필수이지만 최근 논란은 근본 원인을 경시하고 희생양을 찾는 것에만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튬을 배터리로 사용하는 전기차는 배터리의 타입, 제조국과 기업에 관련 없이 상대적으로 높은 화재 위험에 노출되는데 이를 인정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며 "각종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반드시 인류가 달성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이를 달성하는 데에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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