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지 없는데"…이재명, 금투세 결단 '머뭇'하는 이유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입력 2024-08-24 07:29   수정 2024-08-24 08:13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금투세 폐지'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여전히 안개 속에 쌓여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5일 한국 증시가 '대폭락' 사태를 겪은 뒤 금투세 관련 토론회를 취소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2주가 넘도록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소속 의원들 몇몇이 개별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재명 대표의 시선이 '대선'에 가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집토끼'도 잃을 수 없고, '산토끼'도 잡아야 하는 이재명 대표. 당 내부적으로 세력을 규합하는 한편, 중도 표심도 흔들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민주당이 이번 금투세 논란에 쉽게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보입니다.
○'중도' 겨냥하는 이재명…여론은 '금투세 폐지' 가리킨다
당 외부적인 문제는 차라리 간단합니다. 소액 투자자를 이르는 '개미 투자자'가 1400만 명, 특히 20~30대가 활발하게 주식 시장에 참여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금투세는 업계에서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와 외국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는 연 5000만원 이상 수익에 대해 22~27.5%(지방세 포함)의 양도세가 부과되지만, 기관투자자·외국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대신 금투세와 함께 이뤄지는 증권거래세 인하 혜택은 기관투자자도 똑같이 누리게 되어, 금투세를 반대하는 이들은 금투세를 '개인 독박 과세'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인지 금투세 관련 대다수의 여론조사에 '유예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 비중이 연령·지지 정당을 막론하고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금투세 시행 폐지와 유예 의견이 각각 34.0%, 23.4%로 집계됐습니다. 폐지와 유예 의견을 합친 비중은 57.4%인 반면,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27.3%에 그쳤습니다.

지난 12~14일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무선 ARS 방식으로 금투세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에서도, 폐지 또는 완화(세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25.3%와 23.3%로 나타났습니다. 폐지 또는 완화를 합쳐 48.6%인 반면, 현행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34.2%였습니다.

지역별로는 '폐지하거나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응답과 '현행대로 유지' 응답이 동일하게 나타난 △광주·전남북을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인천·경기(51.4%) △서울 49.8% △부산·울산·경남 47.9% △대구·경북 45% △강원·제주 45.2% 순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여러 차례에 걸쳐 금투세에 대해 유예 또는 완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러한 표심을 의식해서로 보입니다. 이 대표가 대권을 위해 '중도'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당 내부 문제…'이해찬이 만든 금투세를?'
그러나 당 내부적인 문제가 복잡합니다. 금투세가 친노의 좌장으로 야권에서 '상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금투세는 지난 2019년 1월과 2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금융투자협회와 간담회를 가진 뒤 본격적으로 도입이 논의됐습니다. 민주당은 이들과 간담회 내용을 토대로 정부에 금투세 도입 및 증권거래세 점진적 폐지를 요구하며 같은해 3월 '증권거래세 인하 방안'을 내놨습니다. 현재 금투세법 제정안은 2020년 여름 제출됐고, 민주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통과됐습니다.

도입 당시 기재부는 세수 감소 문제와 기관투자자들만 이득을 보는 문제 등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이었지만, 이해찬 당시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금투협이 금투세 도입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며, 그 중심에 당시 실세였던 이해찬 전 대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전 대표는 2020년 8월 당 대표를 끝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당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꼽힙니다. 친명계가 지금의 민주당 주류가 되기까지, 힘을 실어줬던 인물 역시 이해찬 전 대표입니다.

친노·친문 계보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던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경선 및 대선을 치르며 이해찬 전 대표의 지지를 얻어냈고, 결국 민주당 주류가 됐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연임 확정 후 임명한 당 대표 비서실장인 이해식 의원 역시 '이해찬계'로 분류됩니다.

압도적인 지지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라고 하더라도 대선까지 고려한 당내 세력 규합을 생각한다면, 이해찬 전 대표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을 거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대표의 입장에서는 이해찬 전 대표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했던 금투세에 대해 명확하게 유예 또는 폐지 입장을 내놓기 껄끄러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대표가 금투세에 대해 자신과 이견을 보인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유임한 것 역시 이 대표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결국 금투세 유예나 폐지 쪽으로 가닥을 잡고 움직일 거라는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대권'을 손에 잡아야 하는 이상, 이 대표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분석입니다.

이 대표의 강력한 지지층인 '개딸'이 모여 있는 '재명이네 마을'에서도 '금투세는 당론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글이 인기글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글쓴이는 "민주당은 금투세가 국민의힘에서 발의한 법안임을 알리고, 폐지를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민심이 떠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이 대표가 '당원 주권시대'를 천명하며 '이재명 2기' 체제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들 지지층의 주장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 대표로서는 금투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하나의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니까요. 코로나 확진으로 자기 격리 중인 이 대표가 당무에 복귀한 뒤 금투세에 대해 정리된 입장을 밝힐지 주목됩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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