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로 불황 정면돌파…삼성 23조·현대차 7조 쏟아 '미래' 챙긴다

입력 2024-08-23 17:55   수정 2024-09-02 16:39

요즘 기업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올 들어 7월까지 1153개 기업이 공중분해(대법원 법인파산신청 기준)됐다. 역대 최대다. 고금리·고물가 충격에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기업이 늘었다. 투자도 그만큼 위축됐다. 하지만 침체한 분위기에서 4대 그룹 간판 계열사는 오히려 공격적 행보를 걷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51조원을 투자했다. 작년보다 20% 많은 금액이다.
○반도체·車·배터리 투자 집중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 주요 상장사 12곳은 올 상반기에 51조4447억원을 투자했다. 작년 상반기보다 19.1% 늘어난 규모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23조4084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17조499억원)보다도 많다. 번 돈보다 더 많이 투자해 인공지능(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사업 역량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현대차(투자 규모 6조8951억원), 기아(1조2157억원), 현대모비스(1조839억원)를 비롯한 현대차그룹 간판 계열사 3사는 올 상반기에 9조1947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60.7% 늘었다. 미래차 연구개발(R&D)과 국내외 설비 확충에 투자를 집중했다.

지난해 상반기 2조7140억원을 투자한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에는 6조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단행했다. 두 배 이상 투자를 늘려 HBM 사업 역량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반기 투자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회사는 HBM 생산 역량을 확충하기 위해 ‘용인 클러스터’ 첫 번째 팹(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에 9조4000억원을 투자한다.

배터리업체들도 투자 확대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올 상반기 각각 5조8288억원, 3조7503억원을 투자했다. 전년 동기보다 39.6%, 139.6%씩 늘었다. 두 회사의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236% 감소한 9003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상반기에 그 10배를 투자에 쏟아부은 것이다. 두 회사는 국내외 배터리 설비 증설에 투자를 집중한다. 삼성물산(7242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7108억원), SK텔레콤(2782억원), 삼성전기(2933억원) 등도 투자를 확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생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인천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부지에 공장을 짓는다. 삼성전기는 반도체 패키지기판 사업 등의 역량 확충을 위해 300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일자리 46만 개 창출 효과 기대
4대 그룹 투자는 괄목할 만큼 늘었지만, 기업 전체 투자는 주춤한 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설비투자 증가율(전분기 대비)은 올 1분기 -2.0%, 2분기 -2.1%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한은은 지난 22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기존 전망치(3.5%)를 훨씬 밑도는 0.2%로 내다봤다. 고금리에 재료비와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투자심리가 움츠러든 영향이다.

그나마 수출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고용을 늘리고 소비를 북돋우는 ‘낙수 효과’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의 산업별 투자 취업유발계수에 따르면 4대 그룹 계열사가 올 상반기 투자한 51조원을 국내에 모두 쏟았다고 가정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45만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일각에서는 금리 내림세가 이어지는 만큼 올 4분기에 투자가 기지개를 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과 미국 중앙은행(Fed)이 나란히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회사채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AA-등급 회사채(3년 만기 기준) 금리는 이달 5일 연 3.271%에 마감했다. 2022년 3월 25일(연 3.163%) 후 2년5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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