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중략) ~한국의 학원.”
23일 낮 12시 일본 효고현 한신고시엔구장. 일본의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 선수들이 한국어 교가를 목놓아 부르는 모습이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교토국제고가 고교 야구 꿈의 무대이자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직후다. 교토국제고 응원석에 모인 2800명가량은 물론 재일 동포 사회 전체가 “기적이 일어났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교토국제고는 이날 열린 제106회 여름 고시엔 본선 결승전에서 도쿄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에 연장 접전 끝에 2-1로 승리했다. 한신고시엔구장 설립 100주년에 열린 여름 고시엔 우승팀이자 교토부 대표로는 68년 만에 정상에 오른 팀으로 기록됐다.
이날 경기는 1회부터 9회까지 ‘0’의 행진이 이어지며 팽팽한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교토국제고는 연장 10회초 무사 1·2루에 주자를 두고 공격하는 승부치기에서 2점을 냈다. 10회말 간토다이이치고에 1점만 내주면서 승리를 확정했다.
고시엔은 일본 3700여 개 고교 야구팀 중 치열한 지역 예선을 거쳐 49개 학교만 자웅을 겨룬다. 교토국제고가 속한 교토 예선은 73개 팀이 출전했는데, 본선 진출권은 한 장뿐이었다. 일본이 낳은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미국 LA 다저스)조차 고교 시절 두 차례 고시엔 본선에 나섰지만 모두 1차전에서 탈락했다.
1999년 야구부를 창단한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 정상에 오른 것은 기적으로 평가된다. 학교 규모가 작은 데다 야구부 역사도 짧은 편이기 때문이다. 25년 전 첫 공식 경기에서 0-34로 대패하며 출발한 학교라 더욱 그렇다.
1990년대 후반 학생이 70명으로 줄어 폐교 위기에 몰리자 학생 모집을 위해 꺼낸 카드가 야구부다. 고교생 138명 중 야구부 소속이 61명으로 거의 일본인이다. 전체 학생 90%가 일본 국적이다. 대부분 야구부 또는 K팝 등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안고 입학했다.
시련도 많았다. 좌우 펜스까지의 길이가 짧은 야구장에서 찢어진 야구공에 테이프를 감아 쓰는 형편이다. 2021년 처음 고시엔 4강에 진출했을 땐 한국어 교가를 트집 잡은 일본 극우단체의 협박 전화가 이어졌다. 한국어 교가를 바꾸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열악한 훈련 환경은 오히려 교토국제고를 강팀으로 만들었다. 타격 훈련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대신 수비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고, 타격도 높고 멀리 치기보다 낮고 강한 타구를 만드는 쪽에 집중했다. 이런 훈련 성과는 팀 전체가 함께 득점을 생산하는 ‘릴레이 단타 야구’로 나타났다.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은 이날 한국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연습했다”며 “아이들의 작은 힘으로 야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에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 창업주인 이희건 명예회장이 설립한 한일교류재단은 교토국제고 기숙사 개·보수를 위해 지난해 12월 1억원을 기부했다.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는 지난 2월 일본 스프링캠프 뒤 쓸 만한 야구공 1000개를 모아 교토국제고에 보낸 데 이어 계속 후원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교토국제고는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대회에만 최소 3000만엔(약 2억8000만원)을 부담했다. 백 교장은 “한국에 계신 분들과 동포 여러분이 많이 성원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고시엔(甲子園)
일본 고교야구대회를 통칭하는 말이다. 매년 3월 열리는 ‘선발고교야구대회’를 봄 고시엔, 8월 열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를 여름 고시엔이라고 부른다. 대회가 치러지는 효고현의 프로야구단 한신타이거스 홈구장 명칭에서 따왔다. 이 홈구장은 개장 연도가 1924년 ‘갑자(甲子)년’이어서 고시엔이라고 불린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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