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초실감 디스플레이·초저전력 반도체 원천 기술 찾았다

입력 2024-08-26 15:54   수정 2024-08-26 15:56


국내 연구진이 새로운 p형 반도체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차세대 박막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초실감 디스플레이와 함께 초저전력 반도체 개발에 사용될 원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19일 텔루륨 기반 p형 반도체 소재를 활용해 상온 증착이 가능한 p형 셀레늄-텔루륨(Se-Te) 합금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트랜지스터는 n형 반도체와 p형 반도체로 나뉜다. 두 반도체의 차이를 알기 위해선 실리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실리콘 단일 원자는 최외곽 전자가 4개다. 실리콘 분자 내부는 무수한 각각의 원자들이 최외곽 전자를 서로 공유하며 단단히 결합(공유결합)해 있다. 이렇게 결합이 단단하면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실리콘에 최외곽 전자가 1개 이상 많거나 1개 이상 적은 원소, 즉 불순물을 넣으면 단단하던 공유 결합에 균열이 생긴다. 이 때 비로소 전자가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전자가 원래 있던 자리, 빈 구멍을 ‘양공’이라고 한다. 양전하(positive)를 띤 구멍이란 뜻이다. 양공의 이동을 전류로 본다. 전류의 방향과 전자 이동 방향이 반대인 것은 이 때문이다.

n형 반도체는 전자가 1개 많은 원소를 첨가한 반도체를 말한다. 전하를 옮기는 캐리어(운반체)로 음전하(negative)를 띤 자유전자를 사용한다. 반대로 p형(positive) 반도체는 전자가 1개 적은 원소를 첨가한 반도체다. 캐리어는 양공을 사용한다. 이 반도체를 p-n-p, 또는 n-p-n 순으로 접합해 전압 인가 방향을 조절하면서 필요에 따라 전류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게 만든 스위치가 바로 트랜지스터다.

현재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소재는 인듐갈륨아연(IGZ)을 불순물로 넣은 n형 산화물 반도체다. 최근엔 240헤르츠(Hz) 이상 주사율이 요구되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 p형 산화물 반도체 수요가 높아졌다. n형 산화물 반도체만으로는 높은 주사율을 갖는 디스플레이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p형 산화물 반도체는 n형 산화물 반도체보다 대체로 전기적 특성이 좋지 않다. 제조 비용도 많이 든다.

연구진은 텔루륨에 셀레늄을 첨가해 상온에서 비정질 박막을 증착한 뒤 열처리를 해서 p형 텔루륨-셀레늄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이 반도체를 n형 산화물 반도체 박막 위에 놓으면 텔루륨의 두께에 따라 n형 반도체의 전자 흐름을 제어해 ‘문턱전압’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였다. 문턱전압은 전류가 흐르지 않던 상태에서 흐르는 상태로 바뀌는 순간의 전압을 말한다.

이번에 개발된 트랜지스터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가 경쟁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들 때 쓰는 적층 공정의 단점을 해결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HBM은 여러 개의 웨이퍼를 쌓고 TSV(실리콘 관통전극)로 뚫어 전기적으로 연결한다. TSV를 쓰면 소비 전력을 줄일 수는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수율을 높이기가 어렵다.

TSV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개 웨이퍼를 적층하는 대신 하나의 웨이퍼 위에 소재를 쌓아올리는 모노리틱(Monolithic:단일 덩어리) 3D(3차원) 방식이 떠오르고 있다. 아직은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다. 핀펫과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다음 차세대 반도체 공정으로 꼽히는 C-FET(상보형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도 이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번에 ETRI가 개발한 텔루륨 기반 p-n 접합 트랜지스터는 모놀리틱3D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ETRI 관계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확장현실(XR) 기기 등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초저전력 반도체 회로 연구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지난 4월과 6월 연속으로 게재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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