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D램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에 넘긴 협력업체 임직원들은 작년 9월에야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2021년 1월 기소한 지 2년8개월 만에 나온 1심 결과다. 대법원 판결까지 앞으로 4~5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형사 재판 지연으로 민사소송을 통한 피해 보상 시점은 아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민형사 1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이 5년 전보다 50% 늘어난 가운데 올 상반기 장기 미제 민사사건이 이미 지난해 전체 규모를 넘어서는 등 재판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다. 내년 법관 임용 기준이 법조 경력 7년 차 이상으로 올라가 ‘판사 임용 절벽’까지 현실화하면 재판 지연 만성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전체 사건 수는 줄고 있다는 것이다. 민사본안 1심 사건 접수 건수는 2017년 101만여 건에서 2022년까지 매년 감소했다가 지난해 78만여 건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장기 미제 재판은 되레 늘고 있다.
법조계는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시절 변화한 인사 제도를 재판 지연과 미제사건 적체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2018년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법원장 인사를 ‘인기 투표’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열심히 일하는 법관에 대한 인센티브 시스템이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71년 만에 없앤 것도 엘리트 법관의 이탈을 부추겼다. ‘재판의 허리’ 역할을 하는 경력 15년 차 이상의 고법 판사 중 퇴직자가 2020년 11명, 2022년 13명, 지난해 15명으로 늘었다.
5년 법조 경력자의 판사 자원 확보와 7년 이상 임용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게 법원 내부의 설명이다.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통상 7년 차에 해외연수를 떠나고, 10년 차에 파트너 변호사에 도전한다. 한 법원 관계자는 “능력이 검증된 7년 차 이상 법조인들이 낮은 처우와 지방 순환 근무를 감내하며 판사에 지원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합의재판부가 주요 사건을 다루고 국민도 합의제를 선호하는 한국적 상황도 역량 있는 판사의 안정적 수급이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법조일원화 제도가 정착된 미국 영국과 달리 국내 법원은 1심부터 재판장 한 명과 배석판사 두 명으로 구성된 합의재판부가 중요 사건을 담당한다. 새로 임용된 법관은 7년여간 합의부 배석판사로 일하며 자료조사와 기록·법리 검토, 판결문 초안 작성 등을 맡으며 업무 숙련도를 쌓고 단독 판사가 되는 도제식 교육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됐다.
대다수 국민도 단독재판부보다 합의부를 선호하는 편이다. 여러 판사가 함께 내린 판결이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판사 수급난으로 합의부 재판 비중이 더 줄어들면 재판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합의부를 선호하는 국민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변호사들은 점차 전문화되지만, 판사들은 여전히 순환보직 시스템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다루게 된다”며 “이런 전문성 부족은 재판의 질적 저하와 재판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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