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입력 2024-08-28 18:20   수정 2024-08-29 00:25

대전 성심당의 대표 상품 튀김소보로는 1980년 5월 출시됐다. 임영진 성심당 사장이 대표로 취임한 해다. 튀김소보로는 출시되자마자 대단한 히트작이었을까. 보통 사람들은 요즘의 인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할 터다. 하지만 성심당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은 불과 요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튀김소보로가 하루아침에 성공작이 된 건 아니다. 지난 44년 동안 꾸준히 팔리며 성심당의 이름에 무게를 더해온 스테디셀러다. 유명해진 것은 ‘하룻밤 사이’일지 몰라도, 지금 수준의 성과를 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들인 시간과 경지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운전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F1 드라이버지, 30년 무사고 택시 운전사가 아니지 않은가. 경지에 이르려면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시간을 쌓아가야 한다. 방향성이 모호하면 애써봤자 손가락으로 움켜쥔 모래처럼 흘러 버리고,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방향으로 노력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비로소 그 경영자와 그 기업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성장하지 못한 경영자는 머무는 게 아니라 후퇴한다. 경쟁은 늘 동적인 까닭이다. 그래서 기업가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모든 처음은 힘들다. 첫 번째 창업, 첫 번째 제품, 첫 번째 고객…. 힘든 것은 마음이 앞서가는 까닭이다. 처음이라서 자신의 역량을 판단하지 못한다. 역량에 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많다. 그래서 실수가 잦다. 하지만 다행히도 에너지는 넘치기 때문에 뛰다가 넘어져도 금세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묘수는 없다. 10년 걸릴 일이 한 달로 줄어들 수는 없다. 한 달 동안 단 1분도 눈을 붙이지 않고 밤새워 일한다 해도 720시간밖에 안 된다. 1년 내내 한잠도 자지 않는다고 해도 8760시간.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이 이야기한 비범함으로 가기 위한 최소 요건 ‘1만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쉬엄쉬엄해서도 안 된다. 굳게 마음먹고 한 우물을 매일 10시간씩 파도 4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 앞서 이야기한 1만 시간이 성공의 기준이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최소 요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나아갈 일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해, 문제를 마주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힘들지만 필요한 결정을 제때 내려가며, 위기라고 생각할수록 고객의 눈높이에서 기본을 다시 생각하면서. 묘수를 찾지 말자. 그러다 커브 길에서 이따금 승부를 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한 나를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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