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찰의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체포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서방 국가와 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는 프랑스와 정면충돌할 조짐을 보인다. 텔레그램 활용도가 높은 암호화폐 시장은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는 등 요동치고 있다. 각국 정부의 인공지능(AI) 규제에 몸을 사리던 SNS 기업 수장들은 앞다퉈 표현의 자유 이슈를 들고나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7일(현지시간) 통합러시아당 행사에서 “두로프 사건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완전히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수사의 일환일 뿐 결코 정치적 결정이 아니다”고 한 말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텔레그램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인터넷 플랫폼 중 최대 규모”라며 미국 배후설을 거론했고, 러시아 국영 언론 알티(RT)는 “서구의 반러시아 진영이 텔레그램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두로프를 구금했다”고 해석했다. 러시아와 프랑스 간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조짐을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텔레그램을 주요 군사 통신 수단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위기감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러시아의 군사 전문 블로거인 포뵤르누티예나는 “사실상 러시아군 통신 책임자를 구금한 것”이라고 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두로프 체포는 러시아에 가장 큰 비극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보안성과 은밀성이라는 텔레그램의 매력은 암호화폐 시장과 딱 들어맞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가 텔레그램을 쓰고 있다. 두로프 CEO 체포가 암호화폐 시장에 악재인 이유다. 뉴욕타임스(NYT)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텔레그램이 없는 거래를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텔레그램과 연동된 코인·암호화폐만 15개에 이른다”고 했다.
암호화폐와 정보기술(IT)업계는 프랑스 당국에 두로프 CEO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플랫폼 운영자에게 성범죄, 사이버 폭력, 마약 밀매 등의 모든 책임을 묻는 건 과하다는 논리다. 일론 머스크 X(옛 트위터) CEO는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BBC는 “극단주의·불법 콘텐츠를 관리하는 텔레그램의 시스템은 다른 메신저에 비해 상당히 취약하다”며 “딥페이크 등 콘텐츠 제작 자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각국이 규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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