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독일 남쪽 약 150만 명이 사는 도시 뮌헨. 서울 인구의 6분의 1 정도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인기 최정상을 달리는 아티스트들이 물밀듯이 방문한다. 올해만 해도 테일러 스위프트, 콜드플레이, 아델, 메탈리카 등이 이 도시를 찾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유럽 각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공연을 보러 일부러 뮌헨을 찾는다. 잉글리시 가든에서 우연히 만난 70대 노부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지만 음악 공연장은 뮌헨이 더 좋아 콜드플레이와 아델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짙고 깊은 목소리로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델. 그는 현재까지 ‘19’ ‘21’ ‘25’ ‘30’ 등 총 네 장의 정규앨범을 냈고 7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거물급 아티스트다. 그의 음악은 슬픔과 고통, 때론 치유와 행복의 순간을 서정적 리얼리즘으로 승화해 우리의 보편적 가치에 호소한다.
아델은 8월 내내 뮌헨에 머물며 레지던스 형태의 공연인 ‘아델 인 뮌헨 2024’를 이어갔다. 이 공연은 아델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한 ‘위켄즈 위드 아델(Weekends with Adele)’의 유럽 버전이다. 뮌헨 공연은 10회에 걸쳐 회당 약 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아델은 ‘메세 뮌헨’에 초대형 특별 공연장을 설치하고, 공연 전후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푸드코트와 머천다이징 팝업 버스, 대관람차 등을 마련했다. 동시에 약 8만 명이 모였다 흩어질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팝업 스토어를 지은 것이다.
공연장을 찾은 지난 14일. 시작 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우비는 이미 다 팔렸고 비를 쫄딱 맞으며 공연을 봐야 할 판이었다. 한편으로 아델 노래같이 음울하고 묵직한 감성을 즐기기엔 이만한 날씨도 없다고 생각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220m 길이의 곡선형 LED(발광다이오드)가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장관을 이뤘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번개가 사방으로 탁 트인 경기장 하늘을 가르던 그때, 무대 정중앙에 짙은 마린 블루의 디올 드레스를 입은 아델이 우아하게 등장했다. “헬로! 이츠 미(Hello! It’s Me).”
첫 소절과 함께 거짓말같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노래가 절정에 치닫자 날씨마저 무대 효과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이어진 곡 ‘루머 해스 잇(Rumor Has It)’에서 아델은 템포를 조금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 드링크 와인(I Drink Wine)’ ‘이지 온 미(Easy on Me)’ 등에서 아델은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워터 언더 더 브리지(Water Under the Bridge)’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기타 리프와 여유 넘치는 목소리는 선선한 바람과 하나가 돼 영혼까지 흐뭇하게 했다.
소울적 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원 앤드 온리(One and Only)’ ‘아이 윌 비 웨이팅(I’ll Be Waiting)’ ‘오 마이 갓(Oh My God)’ ‘센드 마이 러브-투 유어 뉴 러버(Send My Love-to Your New Lover)’ 등을 연달아 부를 때 비가 더 세차게 퍼부었다. 아델도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흠뻑 젖은 채 공연을 이어갔다. 비가 더 많이 올수록 그의 노래는 마음에 더 사무쳤다.
궂은 날씨에 아델도 춥고 힘들었는지 스태프에게 검은 양말과 뉴발란스 운동화를 가져다 달라고 해 신었다. 이때 “이게 세상에서 제일 편해”라며 드레스를 입은 채 무대를 터벅터벅 걸어 다녔는데, 시원스러운 모습에 관객들도 환호했다. 밥 딜런의 명곡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 ‘셋 파이어 투 더 레인(Set Fire to the Rain)’ 등 세찬 비를 뚫고 그는 약 20곡을 거뜬히 소화했다. 공연 막간 관객을 향해 건넨 농담은 ‘이렇게 지독한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이 정도로 유쾌하지?’ 할 정도로 반전 매력에 푹 빠지게 했다. 빗속에서 아델은 더욱 찬란했고, 그래서 아름다운 무대였다.
뮌헨=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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