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러시아 '비운의 천재' 차이콥스키

입력 2024-08-30 18:22   수정 2024-08-31 00:45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알코올 중독과 불면증, 우울증 등에 시달렸다. 동성애자로 알려졌고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결혼 생활 역시 불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음악학자 사이먼 모리슨이 쓴 <차이콥스키의 제국>은 차이콥스키의 극적인 인생보다 음악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전기다. 저자는 “차이콥스키는 인생의 굴곡과 개인적 위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음악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한다.

차이콥스키는 1840년 안락한 러시아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접한 러시아 민속문화와 푸시킨의 동화는 이후 차이콥스키 오페라의 근간을 이뤘다. 공무원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은 그는 예술적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음악협회에 들어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안톤 루빈시테인 밑에서 공부했다. 이후 1878년까지 모스크바음악원 교수로 일했다.

차이콥스키는 혜성과 같이 등장하지 않았다. 초기 오페라는 실패했고, 처음 두 교향곡도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올바른 형식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이 젊은 작곡가는 1875년 내놓은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으로 비로소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이 곡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졌고, 20세기 들어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에 의해 다시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유산을 설명하는 핵심은 발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발레 레퍼토리다. 차이콥스키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드라마틱하고 접근하기 쉬운 곡을 풍성하게 편곡해 자신의 영웅인 모차르트를 추모했다.

‘1812년 서곡’은 차이콥스키 작품 중 평가가 엇갈리는 곡이다. 이 노래는 1880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격퇴한 역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스스로 이 곡에 대해 ‘시끄럽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모순적이게도 러시아 사람들은 그의 발레 작품 이상으로 이 곡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각종 국가적 기념 행사와 이벤트, 광고 음악 등에 아직까지 종종 쓰인다.

정리=신연수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마이클 오도널의 서평(2024년 8월 24일) ‘Echoes of an Imperial Composer’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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