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대신 '금융사 신탁'…"효도약속 어긴 자녀, 상속 취소"

입력 2024-09-01 17:20   수정 2024-09-09 15:53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후를 준비하는 중장년층 사이에서 유언 대용 신탁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유언 대용 신탁은 은행 등 금융사와 신탁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유언 기능을 하는 금융상품이다. 금융사는 위탁자 생전에 재산을 관리하다가 위탁자 사후에 배우자와 자녀 등 상속인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재산 이전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예컨대 첫째 딸에게는 아파트를, 둘째 아들에게는 상가와 현금을 물려주라고 지정하는 식이다. 그 대신 금융사는 계약·집행·관리 수수료를 받는다.

유언장보다 간편해
고령 인구와 상속재산이 늘어나면서 유언 대용 신탁 시장도 확대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상속 및 증여재산은 188조4214억원으로 5년 전(90조4496억원)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실제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올해 2분기 유언 대용 신탁 잔액은 3조5150억원으로 집계됐다. 4년 전인 2020년 말(8800억원)보다 4배가량 커졌다.

유언 대용 신탁의 가장 큰 장점은 간편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상속은 주로 유언장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유언의 효력을 갖기 위해선 공증인이 작성하는 공정증서 유언장, 자필증서, 녹음 등 요건이 까다롭다. 반면 유언 대용 신탁은 본인이 가입하고, 은행 등 금융사가 대신 집행해주기 때문에 비교적 편리하다. 또 위탁자 사후에는 금융사가 신탁계약에 따라 지정된 수익자에게 상속재산을 이전해주기 때문에 유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상속 분쟁을 막을 수 있다.

유연한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도 유언 대용 신탁의 장점으로 꼽힌다. 자식이 부양 의무를 다하면 상속재산을 주는 조건으로 신탁을 설계한 후 자녀가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신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미성년을 대상으로 상속한다면 일정한 연령이 될 때까지 은행 등 금융사에서 대신 재산을 관리해주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에게도 유언 대용 신탁은 유용하다. 노년을 대비해 요양비·병원비 등을 매달 수령하도록 신탁을 통해 계획하거나 사망 시 장례와 봉안 시설, 기부 계획 등을 지정할 수 있다.
유류분은 인정 추세
유언 대용 신탁을 맡길 수 있는 재산은 △금전 △증권 △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 권리 △지식재산권 등 일곱 가지로 제한된다. 부동산 가운데 논·밭·과수원 같은 농지는 신탁이 불가능하다. 최근 법원이 유언 대용 신탁 재산도 유류분(유언과 관계없이 특정 상속인이 보장받는 일정 비율의 상속재산) 반환 대상으로 판결하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유언 대용 신탁을 하더라도 유류분을 감안해 재산을 분배해야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유언 대용 신탁은 고액 자산가가 가입한다는 편견도 적지 않았지만 최근엔 가입 문턱이 낮아졌다. 현재 최소 가입 금액은 5000만~10억원이다. 하나은행은 2010년 금융권 최초로 ‘하나 리빙트러스트’를 출시해 유언 대용 신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한은행도 ‘신한 신탁 라운지’를 열고 운영에 나섰다. 중소·중견기업 거래가 많은 기업은행은 ‘IBK 내뜻대로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내놨다. 보험사 가운데에서는 삼성생명·삼성화재·교보생명·한화생명·미래에셋생명·흥국생명 등 6개사가 신탁 사업을 운영 중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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