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나이키와 언더웨어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 등이 실적 부진에 빠지자 의류·패션 업계에선 이른바 ‘깨어있는(WOKE)’ 마케팅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성(性)상품화와 루키즘(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성·인종 소수자 등을 모델로 내세우는 등 다양성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매김했지만 과한 마케팅 전략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나이키의 다양성 추구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이 매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나이키는 오래 전부터 다양성 추구 마케팅을 펼쳐왔다. 그러다 2018년 경찰관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무릎 꿇기 시위’ 원조인 미식축구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내세우며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트위터에 “나이키는 분노와 불매운동으로 완전히 죽어가고 있다”며 “나이키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나”라고 비판했다. 이 때만해도 논란 이후 매출이 오히려 늘어났다. 그러나 비슷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이 이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유니폼 국기를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등 색상으로 디자인 한 탓에 리시 수낵 전 영국 총리와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현 총리)가 동시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마이클 세라지오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인터넷 매체 복스(VOX)에 “상업적 커뮤니케이션은 자신이 주도하려 해선 안되고 분위기를 따라야 한다”며 “공격적으로 정치적 신념을 강요할 경우 반감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빅토리아시크릿의 실적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과거 빅토리아시크릿은 화려한 고가의 언더웨어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고, 지젤 번천과 지지 하디드 등 세계적 모델을 내세운 패션쇼는 매년 화제였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성상품화 논란에 이어 외모와 관계없이 자신의 신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이 확산되면서 빅토리아시크릿은 공격의 대상이 됐다. 창업자 레슬리 웩스너가 미성년자 성착취로 파문을 일으킨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분을 유지한 사실이 드러나며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기도 했다.
빅토리아시크릿은 2019년부터 패션쇼를 폐지하고,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기용하고, 소수자들도 대거 모델로 내세웠으나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19년 빅토리아 시크릿의 연매출은 75억900만달러에 달했으나, 지난해 매출은 61억8100만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경영진들은 올 가을부터 다시 패션쇼를 재개하고, 여성미를 강조하는 제품 라인을 강화하기로 했다.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희망에 주가는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마틴 워터스 전 CEO 후임으로 힐러리 슈퍼 새비지X펜티 CEO를 내정했다는 소식에 지난 14일 주가는 전일 대비 16.41% 급등하기도 했다. 새비지X펜티는 미국 팝스타 리한나가 만든 여성 속옷 브랜드로 빅토리아시크릿의 경쟁사다.
미국 맥주 시장 1위를 20년 이상 굳건히 지키던 AB인베브의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협찬 논란 후 1년여 만에 점유율 3위로 추락했다. 컨설팅회사 범프 윌리엄스가 지난 6일까지 4주간 닐슨IQ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버드 라이트의 점유율은 7월 6.5%로, 전체 3위로 밀려났다. 멕시코 수입 맥주 ‘모델로 에스페시알’이 점유율 9.7%로 1위, ‘미켈롭 울트라’가 2위(7.3%)로 올라섰다. 버드라이트는 지난해 4월 트랜스젠더 틱톡 인플루언서에게 개인 맞춤형 버드 라이트 캔을 협찬한 뒤 보수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의 표적이 됐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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